[취재수첩] 긴장 풀린 금융투자협회

김은정 증권부 기자 kej@hankyung.com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수 아닙니까.”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전화를 걸어와 “프리보드시장에 소속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실기업 취급을 받았다”며 이같이 분통을 터뜨렸다. 사연은 이랬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23일 ‘프리보드 12월 결산법인 2012년 반기 실적’이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프리보드 기업 44개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3.6%와 22.7% 줄었다는 게 골자였다. 이런 내용은 ‘프리보드 기업 실적 곤두박질’ 등의 제목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나흘이 지난 27일 저녁 금투협은 부랴부랴 정정 보도자료를 냈다. 23일 배포한 자료에 오류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금투협 직원이 분석 대상 44개 기업 중 6개사의 올 1분기 실적을 상반기 실적으로 잘못 입력했다는 것. 정정결과 44개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2.7%와 8.3% 줄어드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선방한 프리보드 기업들은 최악의 실적을 낸 것으로 오인받았다. 상반기 영업이익을 냈던 한 기업은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둔갑했다. 다른 기업의 영업손실 금액은 10배가량 부풀려져 보도됐다. 프리보드시장은 비상장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2005년 출범했다. 하지만 거래 기업에 대한 정보와 유통 물량이 부족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프리보드시장에서 탈퇴하는 기업까지 나왔다. 부실기업도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이란 인식이 퍼져 기업 이미지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금투협의 ‘반기 실적 산정 오류’는 프리보드 기업 이미지를 더욱 좋지 않게 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뿐만 아니다. 지난 21일에는 금투협이 증권사의 입력 오류를 미리 파악하지 못해 채권 대차거래 금액을 1조원가량 많게 공시하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부터 증권사가 제대로 보고했어야 하지만, 금투협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른 증권사의 확인 전화를 받고서야 정정 공시에 나서는 소동을 벌였다.

증시 거래대금 감소로 증권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점포폐쇄 등 구조조정에 나선 증권사도 많다. 정신 바싹 차리고 업계와 함께 위기타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금투협의 긴장감이 느슨해진 것 같아 씁쓸하다.

김은정 증권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