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참 염치없는 일본이란 나라

언제까지 역사에 눈감을 건가…전범 히로히토 면죄부부터 잘못
日王 '사죄' 한마디면 매듭풀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 방문에 이어 “일왕(日王)이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을 때부터 일본의 격렬한 반응과 이성 상실은 짐작됐던 일이다. 광신(狂信)과 불가침의 ‘덴노(天皇)’ 앞에서 집단적으로 발작하는 행태는 그들의 속성이고 지도자들은 그걸 부추긴다.

이 대통령의 표현이 거칠고 자극적이기는 했지만 못할 말은 결코 아니었다. 일왕의 직접적이고 진정성 있는 사죄는 한·일 두나라의 새로운 관계를 위한 통과의례로서 반드시 매듭 지어져야 할 사안이다.그들이 역사인식의 천박함을 드러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강자 앞에 약하고 약한 상대에 우월감을 과시하는 왜소한 본성 또한 새삼스럽지 않다. 그들에게서 평생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입은 할머니들이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데도 일본 총리라는 사람은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증거를 내놔라”며 기본적 윤리의식마저 잃은 막가는 모습이다.

일본인의 신앙인 덴노는 반세기 동안 동아시아의 끔직한 재앙이었다. 19세기 후반 막부(幕府)체제가 무너진 이후 지금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증조부인 메이지(明治) 무쓰히토(睦仁), 다이쇼(大正) 요시히토(嘉仁), 쇼와(昭和) 히로히토(裕仁)로 이어진 3대는 상징적 존재를 넘어 최고권력자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명실상부한 수장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켰고,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뒤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명령권자였다. 끊임없는 침략으로 주변국을 유린하면서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덴노의 이름으로 자행됐다. 책임의 꼭대기에 그들이 있으니 사죄의 주체는 일왕이어야 한다.

결국 종전(終戰) 후 맥아더가 통치의 편의를 위해 포츠담선언에 명기된 ‘일본의 민주화’를 포기하고 전범(戰犯)의 우두머리 히로히토에게 면죄부를 준 것부터 잘못됐다. 그 하수인들 또한 단죄되지 않고 정치 지도자로 되살아났다. 그것이 일본이란 나라가 뻔뻔한 역사부정과 책임 회피, 잇따른 망언을 일삼는 문제의 근원이다. 그 전범의 후손들은 이제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수많은 학살과 만행의 범죄를 부인하면서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미화(美化)하는 데 광분한다. 나아가 틈만 나면 A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이용해 군국주의 부활을 획책하고 있다. 2차대전의 전세가 이미 기운 1945년 2월 히로히토는 세 차례 총리를 지냈던 고노에 후미마로의 종전 건의를 거부했다. 그 해 4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살해되고 독일의 히틀러는 자살했다. 하지만 히로히토는 마지막까지 ‘국체수호’ ‘본토결전’ ‘일억총옥쇄(一億總玉碎)’로 저항했다. 결국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참화를 자초한 뒤에야 그 스스로의 육성으로 항복을 선언한다. 그런데도 “침략전쟁은 내 뜻이 아니었다”며 군부에 책임을 떠넘기고 빠져 나갔다. 아무 실권이 없었던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폐위됐지만 그는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겨우 1984년 “양국 간의 불행한 과거에 유감”이라는 한마디가 36년간의 침탈로 온갖 고통을 가한 한국에 대한 사과의 전부였다. 그 아들 아키히토가 1990년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길이 없다”고 덧붙였지만 이 또한 어떻게 사죄의 표현이 되는지 알 길 없다.

역사의 가해자로서 제대로 된 사과를 하려면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1970년 서독의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유대인 묘소에서 사죄했던 것처럼 무릎을 꿇으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저 통절한 반성을 전제한 역사인식과 범죄행위에 대한 진실된 참회의 자세를 보여달라는 것뿐이다.일왕의 “사죄한다”는 말 한마디면 얽힌 매듭이 풀릴 일이다. 그것이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염치다. 물론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그나마 과거의 잘못을 반성한다는 뜻을 담았던 기존 일본정부 담화마저도 없던 것으로 되돌리겠다고 한다.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답다. 일본론의 고전인《국화와 칼》을 쓴 루스 베네딕트가 간파한 일본은 ‘손에 평화를 상징하는 국화를 들었지만 허리에는 남을 해치기 위한 칼을 숨긴 존재’다. 우리가 거듭 새겨야할, 꼭 들어맞는 말이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