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물가 태풍 쇼크] "채소 전쟁"…밥상에 상추·호박·오이·시금치가 사라졌다

장마·태풍에 생산지 초토화

가락시장 야채 반입량 '반의 반토막'
식자재 유통업체, 납품 일제히 중단
가격 강세 추석 밑까지 이어질 수도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휩쓸고 간 다음날인 29일 기업 구내식당과 단체급식장에서 호박, 오이, 시금치가 들어간 반찬이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아워홈, CJ프레시웨이, 삼성에버랜드, 동원홈푸드 등 식자재 유통·급식업체들이 최근 가격이 폭등해 수지타산이 안 맞게 된 이들 채소류 사용을 줄줄이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 가락시장에서는 태풍의 여파로 채소 공급량이 ‘반의 반 토막’이 났다. 보름 전(14일) 가락시장의 전체 채소류 반입량은 3995이었으나 이날은 1044에 그쳤다. 가락시장 상인들은 “농산물 출하작업이 대부분 중단됐는데 태풍 ‘덴빈’까지 덮쳐 피해를 더 키운다면 가격 강세가 9월 중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구내식당에서 야채가 확 줄었다

지난주 가을장마에 이어 태풍이 전국의 농산물 산지를 망가뜨리면서 채소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가격이 오른 것도 문제지만 물량을 구하기가 힘들어 ‘채소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가격이 급등한 품목은 비바람에 약한 엽채류다. 가락시장 평균 경락가를 기준으로 지난 1주일 새 적상추 가격이 229%, 치커리가 210%, 주키니호박이 133%, 깻잎이 128%, 열무가 126% 올랐다. 가격이 1주일 만에 두 배가 된 셈이다. 얼갈이배추(72%) 시금치(68%) 애호박(66%) 미나리(64%) 풋고추(63%) 다다기오이(33%) 등 한국인들의 밥상에 오르는 웬만한 채소 가격이 모두 급등했다.이번 가격 급등은 태풍 볼라벤과 함께 그에 앞서 이어진 장마가 공범이다. 장준덕 동원홈푸드 농산구매팀 차장은 “8월 중순까지만 해도 장마가 빨리 끝났고 날씨가 쾌청해 시황이 좋았는데 많은 비에 젖으면서 상품성이 전반적으로 크게 떨어졌다”며 “태풍 덴빈이 많은 비를 뿌린다면 가격 고공행진이 다음달까지 장기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싼 것도 문제지만 물량이 없어”

당장 매일 먹을거리 장사를 해야 하는 외식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레스토랑 ‘애슐리’를 운영하는 이랜드 외식사업부 관계자는 “현재 채소 비축량이 없어 가격이 더 싼 산지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깃집 ‘삼원가든’의 박성집 물류팀 대리는 “배추와 상추를 많이 쓰는데 함부로 물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릴 수도 없다”며 “10월까지는 본사 마진을 10%가량 줄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대형 식자재업체들이 일부 엽채류 납품을 전면 중단하는 일은 폭서기와 혹한기 등 1년에 한두 차례 있을까 말까 한 이례적인 상황이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싱싱한 채소를 조달할 수 없게 되자 중국산 냉동채소를 대신 쓰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식감이 크게 떨어지지만 요리에 꼭 안 넣을 수 없는 재료라면 식자재업체를 통해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체급식에서도 당분간 신선한 채소를 찾긴 힘들 전망이다. 김창대 아워홈 농산구매팀장은 “비싼 가격도 문제지만 도매시장에서 우리가 필요한 물량을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야채 가격의 급등세가 가라앉고 물량이 확보될 때까지는 반찬을 무, 감자, 콩나물, 건나물 등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달까지 ‘채소 전쟁’ 우려채소와 달리 육류 가격은 올 들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100g당 가격이 상추(1900원대)가 삼겹살(480원대)보다 4배 이상 비싼 기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르면 다음달 초, 최악의 경우에는 내달 하순까지도 채소류 가격의 고공행진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서울시농수산물공사 관계자는 “가격이 9월 초순이나 중순까지 계속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올여름에 폭염과 가뭄으로 전반적인 작황이 안 좋았는데 태풍이 2개 겹치면서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정우 CJ프레시웨이 농산 상품기획자(MD)는 “엽채류 가격이 단기간에 지나치게 올라 가격 저항이 나타나고 있어 더 오르긴 힘들 것”이라면서도 “대체재인 배추, 양배추 등으로 수요가 몰리면 이쪽 가격이 강보합세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임현우/윤희은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