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의 투자비밀⑤]고액자산가 '눈독'…브라질국채·KP물이 뭐길래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에 상륙한 지난달 29일 김영주 한국투자증권 차장(41)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고객들 방문에 나섰다. 오전부터 시작된 고객들과의 상담은 날씨에 신경쓸 새도 없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태풍 같이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뒤 장 마감께에야 영업점으로 돌아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고액자산가 전문 프라이빗뱅킹(PB)센터라고 하더라도 일부 기존 관리고객을 제외하면 찾아오는 고객들은 많지 않습니다. 오전 8시께 회의를 마친 후 수원 등지로 돌아다니다보면 하루에 2~3명의 고객만 접해도 하루가 훌쩍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모두 자산을 쌓은 특유의 노하우가 있는 고객들인 만큼 한 분도 허투루 대할 수 없습니다." 김 차장은 프라이빗뱅커(PB) 생활 11년차의 베테랑이다.

2001년 한국투자증권의 첫번째 PB 영업점 중 하나인 압구정 PB센터를 통해 업무를 시작, 지금까지 한국투자증권의 PB 사업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국투자증권의 유일한 고액자산가 전문 PB센터인 V프리빌리지 강남센터에서 총 620억원 상당의 자산을 맡긴 35명의 고객을 관리하고 있다.

◆ "슈퍼리치는 흔들리지 않는다""슈퍼리치들은 '지키는 투자'에 초점을 맞춥니다. 여유자금으로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만큼 부화뇌동하지 않고 7~10% 수준의 명확한 목표수익률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유자산이 대규모이기 때문에 세금과 세후 수익률에 민감할 수 밖에 없고, 비과세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슈퍼리치들은 투자성향이 '공격형'보다는 '방어형'을 띄는 경우가 많다고 김 차장은 전했다.

본인이 자산을 쌓아 부를 이룬 사례가 많아 뚜렷한 근거를 세워 투자에 임하고 여유자금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단기에 결정을 번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점도 특징이다. 우선적인 상품 선택의 기준은 세금이다. 이자와 배당을 더한 연간 금융소득이 4000만원을 넘는 투자자는 초과 금융소득을 다른 종합소득과 합산하는데, 최고 41.8%에 달하는 세금을 부담하게 되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슈퍼리치들은 금융상품의 수익률을 세후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은데, 7%의 수익 추구 상품은 은행 정기적금 금리보다 다소 높은 4.1% 수준으로 판단하는 방식"이라며 "이번에 주식매매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대상의 시가총액 기준을 100억원에서 70억원으로 낮추면서 일부 대규모 주식 보유 고객들은 해당 종목의 비중 조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세제 개편으로 장기적으로는 주식의 매력이 보다 부각될 수 있는 시점이라고 김 차장은 진단했다. 원칙적으로 주식이나 펀드는 양도 차익에 대해 과세가 없기 때문에 장기 관점에서는 주식의 투자 매력이 돋보일 수 있는 구간이란 평가다. 특히 증여에 관심이 높은 슈퍼리치들이 우량주를 통한 증여 문의가 추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또한 슈퍼리치들은 자산 배분에 신경을 쓴다. 통상 증권사에 맡기는 자금의 80% 가량을 현물, 주가연계증권(ELS), 주식형펀드, 랩어카운트 등 주식 관련 금융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나머지 20%는 당시 유행이나 새로운 상품 혹은 현금화를 통해 자금을 쪼개 움직인다. 상품 투자 및 자금 회수 시 분할 매매를 통해 안전성을 높이는 점도 포인트다.

◆ 최근 관심 상품은? 브라질국채·KP물

최근 슈퍼리치들의 관심 상품은 무엇일까. 김 차장은 브라질국채와 KP물을 꼽았다.

브라질국채의 매력은 비과세 혜택이다. 한국과 브라질 간 조세 협정에 따라 이자소득세가 면제되고,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채권 매매차익과 환차익에 대해서도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김 차장은 "브라질 화폐인 헤알화 약세로 환차손 우려가 불거지며 자금 유입 기조가 주춤했으나 금융소득종합과세 한도가 종전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낮춰지는 내용의 2013년도 세제개편안 여파로 관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인 'KP물(코리안 페이퍼)' 역시 인기가 높아진 상품이다.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낮은 우리은행 등 금융기관 KP물을 중심으로 투자할 경우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고 시중금리 대비 연 1~5%포인트 높은 이자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최근 주가연계증권(ELS)에 대한 관심은 다소 주춤하고 있다. 증시의 변동성이 잦아들면서 ELS의 수익조건 매력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올해 5~6월까지는 ELS 상품들의 쿠폰(이자)이 비교적 높았는데 증시 변동성이 낮아지면서 지수형 ELS의 경우 같은 조건이더라도 기대수익률이 2~3%포인트 가량 떨어졌다"며 "슈퍼리치들이 꾸준히 관심은 유지하고 있지만 증시 부진 여파로 조기상환 기간이 예상보다 다소 연장되면서 인기는 다소 낮아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특허소송에서 완패했지만 슈퍼리치들의 신뢰는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지난달 27일 삼성전자 주가가 7% 이상 급락하면서 슈퍼리치들의 문의가 이어졌고, 일부 자산가들은 이번 특허 소송건을 단기 매매 기회로 삼아 매수에 나서기도 했다.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을 고려해도 110만원대의 주가는 비교적 저렴한 구간이기 때문에 단기 매매 전략에 초점을 맞춰 분할 매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김 차장은 "일부 슈퍼리치들은 삼성전자 주가가 3만~4만원일때부터 꾸준히 장기투자한 전력이 있는 만큼, 절대적인 신뢰는 꺾이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며 "최근 코스피지수 1900대에서 랩어카운트, 주식 등을 일부 현금화한 고객들이 분할 매매를 통해 매수했다"고 전했다.

◆ 재테크? "분할 매수·장기 투자가 답"

슈퍼리치가 아닌 일반투자자들은 어떤 재테크 방식이 유리할까. 슈퍼리치들의 투자 아이디어인 '장기투자·분할 매수' 법칙은 일반인들에게도 역시 중요한 투자원칙이라고 김 차장은 조언했다.

특히 사회 초년생의 경우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절세상품에 가입하고, 나머지는 적립식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주식 관련 상품 분할 매수를 통해 장기 투자에 나설 것을 권했다. 김 차장은 "일반투자자들은 종목에 투자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높지만 장기 관점에서 안정성을 높이려면 소득공제가 가능한 장기 주식형 펀드, ETF 등을 장기적으로 분할해 매수하는 전략이 가장 바람하다"며 "거치식보다는 위험 분산 차원에서 적립식을 권하고, 본인도 재테크를 이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