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30년…최소 3억~4억 필요

베이비부머 노후준비 첫걸음

베이비부머 은퇴 본격화
712만명 중 47만명 올해 퇴직…자산 비중 부동산에 편중
재취업은 눈높이 낮추기 먼저

우리나라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베이비부머들이 본격 은퇴하고 있다. 총 712만명 중 올해에만 47만명이 퇴직할 것이란 추산이다. 1955~1963년생인 이들은 앞으로 10년 내 한꺼번에 경제 일선을 떠나면서 사상 최대의 ‘은퇴시장’을 형성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베이비부머들은 은퇴준비를 제대로 해왔을까. 그렇지 못하다는 게 정부 통계 및 각종 설문조사 결과다. 기대여명이 30~40년에 달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베이비부머 중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에만 가입한 사람은 27%에 달한다.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 가입자까지 포함해도 78%에 그친다. 나머지 22%인 156만여명은 아무런 준비가 안돼 있다는 의미다.○은퇴 후 최소 3억~4억원 필요해

통계청 등에 따르면 베이비부머들이 여생을 사는 데 필요한 자금은 부부를 기준으로 최소 3억~4억원 정도다. 문제는 베이비부머들의 평균 자산이 이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산마저 거주 주택 등 부동산에 묶여 있다. 예금과 같은 금융자산은 5000여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퇴직 후 고정소득이 가구당 평균 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면 빈곤한 것으로 보는데, 우리나라 노년층 중 45%는 빈곤상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베이비부머들이 은퇴 준비를 잘 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자녀교육 때문이다. 돈을 적극 모아야 하는 장년기에 자녀 교육비가 많이 지출되면서 은퇴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자녀 외에 부모 등 부양가족을 많이 두고 있는 세대다. 내년 정년 퇴직을 앞둔 한 베이비부머는 “부모를 봉양하지만 자식으로부터 봉양을 기대할 수 없는 처음이자 마지막 세대”라며 “막상 은퇴하려니 갖고 있는 게 아파트 한 가구밖에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택 다운사이징’ 꼼꼼한 전략을

국내 베이비부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산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부동산 비중은 약 78%다. 이는 미국(35%) 일본(41%) 등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다. 부동산의 경우 매년 보유세를 부담해야 하는 반면 고정적인 소득을 창출하기 어렵다. 최근엔 면적이 작은 집으로 옮겨 노후를 대비하려는 사람이 늘면서 베이비부머들의 고민이 더욱 커졌다. 퇴직시기가 부동산 침체기와 겹친 탓이다. 보유 중인 집을 처분하지 못하고 진퇴양난에 처한 경우가 많다. 특히 중·장년층이 많이 갖고 있는 중대형 아파트값이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져 은퇴자들이 집을 처분하기도 어려워졌다.

국민은행의 아파트 규모별 매매가격지수 통계에 따르면 전용면적 95.9㎡ 이상의 대형 아파트 가격지수는 작년 말 100.4에서 올 7월 첫째주 98.8로 떨어졌다. 반면 중형(62.8~95.9㎡)과 소형(62.8㎡ 미만)은 각각 103.1에서 103.5로, 104.9에서 106.4로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무리해서 집을 팔기보다는 대형 아파트 적체가 해소되는 시점까지 기다릴 것을 권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중소형과 대형의 가격 차이가 적은 지금은 주택 다운사이징에 의미가 없다”며 “매각 차익과 세금 부담을 모두 고려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2 직업 찾되 취업사기 조심

은퇴 후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2의 직업을 찾아나서는 사람이 많다. 50대 이상 중·장년층 자영업자가 310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5명 미만인 소규모 사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도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생계형 창업의 경우 경기 변화에 민감하고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빚더미에 올라앉기 십상이다. 진입장벽이 낮고 초기 투자금이 적게 드는 분야의 창업이 주종을 이루지만 제대로 된 직업훈련이나 창업교육을 받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전직에 대한 환상을 버릴 것을 조언한다. 민간 은퇴연구소 관계자는 “중·장년층이 재취업하려면 눈높이를 낮추고 신입사원으로 새출발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퇴직금 등 목돈을 갖고 있는 베이비부머들을 대상으로 취업사기가 빈번해 주의가 필요하다. 지분투자나 동업을 제의할 경우 일단 의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