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작가 이불 씨 "조선 마지막 왕손의 삶…설치미술로 풀어냈죠"

개인전
“좌절과 실패로 점철된 예술일지라도 그 자체를 행복으로, 또 희망으로 봐야 합니다. 예술은 끊임없는 실패로 단련된 테크닉으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오는 11월4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을 여는 설치 작가 이불 씨(48·사진)는 자신의 미학론을 이렇게 말한다. 올해 초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의 개인전에서 세계 미술계의 격찬을 받은 그는 “앞으로 세계사와 신화, 한국 근대사를 녹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며 “이상향을 향한 우리 사회의 집단적 갈망을 시각예술적 측면에서 고민하며 삶의 존재 이유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역사적, 사회적 현상에 대한 비판적 통찰을 기반으로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해왔다.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이듬해 뉴욕 소호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휴고 보스상 최종 후보로 선정됐다. 199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를 포함한 대규모 설치 작품 4점과 모리미술관 회고전 이후 새롭게 구성한 ‘스튜디오’ 섹션, ‘나의 거대 서사’ 시리즈 ‘벙커’를 내보인다. 소재와 표현방식은 바뀌었지만, 날카로운 사회 비판의식과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를 탐구한 작품들이다.

“쉰을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문화적, 정치적 배경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초기 작업들이 메시지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최근에는 보다 복잡하고 읽어내기 힘든 작업들을 주로 한다”며 “작품 속에 어떤 요소가 있는지, 제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관람객이 궁금해하도록 자극하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다.

전시장 2층에 설치된 신작 ‘비아 네가티바’는 거울과 LED(발광다이오드)조명, 철재 등 다양한 소재로 꾸민 6m 크기의 대형 작업. 작품 내부에 다각도로 세워둔 거울에 공간이 반사되도록 해 무한의 이미지와 미로를 만들어 낸다. 미로처럼 얽힌 인간 두뇌에 대한 지적 탐구를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설명.

“부정을 통해 신을 규정하려는 신학적 방법론에서 차용한 용어 ‘비아 네가티바’를 사용했어요. 관습적인 사고를 뛰어넘어 신성한 존재 또는 유토피아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도전과 실험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겁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손 이구(李玖)의 불행한 삶을 조명한 작품 ‘벙커(M. 바흐친)’도 눈길을 붙잡는다. 해방 이후 미국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다 조선 왕조 복원 사업을 한다는 군사정권에 소환돼 역사의 희생양으로 살다 간 이구의 인생을 표현한다. 관람객이 내는 소리가 작품 속에 융화되면서 이구의 불행한 삶을 느끼게 한다.

3층 전시장에 설치된 ‘스튜디오’ 섹션에서는 그의 예술 스펙트럼을 만날 수 있다. 드로잉 작업은 물론 기계와 유기체의 형체가 혼합된 사이보그 모형 220여점이 나와 있다. 전시는 내년에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뮤담과 2014년 영국 버밍엄 아이콘갤러리에서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02)733-8945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