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인생 쓴 맛 본 뒤 즐기는 법 깨달아…그게 영업 비결"

한경과 맛있는 만남

고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 실패…하루 한 끼 먹기 힘들게 고생
대학입학 후 바로 군 입대

절망이 사람 성숙하게 만들어…마음먹기 따라 모든 게 달라져

'즐겁고 신나게 일하자' 철학…직원들에 웃음 주려 늘 노력
전쟁으로 온 나라가 가난에 허덕이던 1952년에 태어났다. 보통 사람들은 초등학교도 못 가는 형편이었지만 유치원을 다닐 정도로 어렸을 적 부유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대학 시절에는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 정도로 고생을 했다. 잘 나가는 은행원이 됐지만 지점장 진급을 앞두고 아들을 잃으며 다시 인생의 쓴맛을 봤다.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서 자산 300조원을 굴리는 금융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스스로를 ‘잡초 인생’이라고 표현하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60) 얘기다.

최고경영자 김정태 곁에는 늘 웃음이 따라 다닌다. 하나대투증권 사장 시절 그는 사내 장기자랑 행사에 나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마빡이’ 춤을 춰 보수적 문화가 강한 금융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하나은행장 시절엔 새해 첫 출근날 회사 로비에서 반짝이 옷을 입고 개그콘서트의 ‘감사합니다’ 동작을 따라 하며 직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최근 하나금융지주 월례간담회에서는 가수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히트시킨 ‘말춤’을 췄다.이처럼 김 회장이 유머 코드가 담긴 소통을 중시하는 것은 ‘즐겁고 신나게 일하자’는 ‘펀(fun) 경영’ 맥락이다. “힘든 시절을 겪으면서 고난을 극복하는 힘을 키웠습니다.” 그가 겪은 고생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비결은 뭘까. 사골 칼국수로 유명한 서울 종로 김 회장의 단골집 ‘대련집’에서 그의 인생 얘기를 들었다.

○사람과 세상을 믿지 않던 주먹대장

“이 집 음식은 제가 전문입니다. 주문은 저한테 맡기세요.” 자리에 앉자마자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더니 시원한 생배춧잎을 된장에 푹 찍어 먹는다. “생배추부터 한 접시 추가합시다. 2000원이에요.” 소탈한 성격의 김 회장은 지난 7월 회장 취임 100일을 기념해 임직원들과 가진 회식도 이 식당에서 했다고 한다. “옛날 음식이라 편합니다. 입에 딱 맞아요.”어린 시절 얘기부터 풀어 놓는다. 주먹으로 말썽피우던 시절 스토리다. “장남이 아니었는데도 유치원을 다닐 정도로 잘 살았죠. 하지만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만 여섯 군데를 옮겨 다녔습니다. 강릉에서 진주로, 다시 인천으로 서울로, 그리고 부산으로….”

아버지의 선박사업이 잘 나갔기 때문이지만 어린 김 회장에게 이사 길은 만만찮은 고역이었다. “가는 곳마다 놀림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는 촌놈이라고, 부산에서는 샌님이라고요. 전학가서 따돌림받지 않고 적응하려면 친구들에게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적응이 안 될 때는 주먹다짐을 하곤 했죠.”

몰려다니던 친구들과 고교 시절에는 서클도 만들었다. 김 회장은 키 179㎝에 주먹이 보통 사람보다 두 배 가까이 크다. “그때도 반에서 두 번째로 컸죠. 고등학교 1학년 때 태권도 2단까지 땄습니다. 주먹으로 거의 제패했죠.” 그렇게 친구 6명과 만든 서클 이름이 ‘죽림칠현’이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막걸리를 한 말씩 말아 먹었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웃으며 얼버무리는 김 회장의 얼굴에 학창시절의 추억이 그득했다.고등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망했다. 김 회장은 그때 인간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고 했다. “부모님께 늘 ‘사장님, 사모님’ 하던 사람들이 나중엔 ‘이× 저×’ 하면서 돈 갚으라고 달려들더군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만큼 사람을 증오했습니다.”

이후 스스로 ‘인생의 암흑기 10년’이라고 말하는 시절을 겪었다. 대학은 갔지만 하루 한 끼 먹기가 힘들 정도였다. 바로 군에 자원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가정교사를 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을 마치기까지 9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산다”김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영업의 달인’이다. 가는 곳마다 1등 점포, 1등 회사의 신화를 일궜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세상을 삐딱하게 보던 그가 고객과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그는 익산에서 군복무하던 시절 얘기를 꺼냈다. “군복무하던 시절 먹을 것 하나 더 얻어 보려고 성당에, 교회에, 법당까지 줄기차게 다녔습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법당에서 들은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증오심으로 가득했던 당시였죠. 야간 보초를 서면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제 자신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선·후임병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조직을 이끄는 법도 배웠다. “어떻게 마음 먹느냐에 따라 화장실 청소도, 새벽 구보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막걸리 한 잔을 더한 김 회장이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들이민다. “집사람입니다. 남들이 보면 한 스무살쯤 차이나는 줄 아는데 세 살 차이입니다.” 연이어 아내 자랑이다. “소개로 만난 지 4개월여 만에 결혼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에요. 그 사람 말이 ‘법이요, 진리다’ 그렇게 믿고 삽니다.” 갑자기 아내에게 전화를 걸더니 “갑자기 당신이 보고 싶어 전화했다”는 오글오글한 멘트를 날린다. 휴대폰에 뜨는 이름을 보니 ‘♥내사랑♥’다.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곧 의중을 눈치챌 수 있었다. 가족 얘기를 하더니 슬며시 아들 얘기를 꺼낸 것이다. “아들은 어릴 때 기타, 키보드, 드럼까지 했습니다. 지금은 마음을 바꿔 증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미국에서 MBA를 밟고 있어요.” “그런데 원래는 애가 하나 더 있었어요.”

김 회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여섯 살 때 신경암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1992년 제 나이 마흔살 때 일입니다.” 치료약도 없이 1년 반 동안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서 그는 무력함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 절망은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고 보니 모든 사람은 서로가 모르는 아픔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에 대한 시선이 따뜻해졌습니다.”

○“이기려면 영업도, 인생도 즐겨라”

생각을 달리 먹으니 이상하리만치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 1998년 지방지역본부장으로 발령이 났다. 충청은행을 합병했을 때다. “본부장으로 내려가서 보니 전부 놀고 있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월급을 받는지 실망스러웠어요. 그래도 처음부터 혼을 내지는 않았습니다.”

"금융은 제조업의 그림자…기본에 더 충실할 것"

전쟁터 같은 영업현장에서 보이는 나태한 모습들이 성에 한참 차지 않았지만 먼저 그들의 문제와 아픔을 이해하려 다가갔다는 설명이다. “일단 친해지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하는 말이 잔소리가 아니라 충고와 조언으로 들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죠. 그랬더니 서서히 마음을 열더군요. 그렇게 1년을 보내니 다음해에 바로 전국 1등 점포가 됐습니다.” 따뜻한 시선이 서로의 마음을 열어 즐겁게 일했고, 그러자 성공이 따라왔다는 얘기다. 김 회장은 힘든 영업도 즐기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영업은 성공 확률이 실패 확률보다 낮습니다. 따라서 작은 성취에서부터 즐거움을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작은 성과라도 그것을 즐길 줄 알아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만사 ‘풀 수 없는 문제는 없다’는 게 김 회장의 영업관이다. “하나은행 영업 초창기에 아파트를 돌며 팸플릿을 돌렸습니다. 고층 아파트 입구는 자동문으로 닫혀 있었죠. 그럼 신문을 살짝 밑으로 집어 넣고 발로 차 밀으면 안쪽에서 센서가 감지하고 문이 열려요. 그럼 집집마다 ‘띠지’를 겁니다. 영업이 곧 전력이라는 말도 했다. “남들은 제가 영업만 많이 해서 전략이 없다고들 하는데, 영업이 전략입니다. 전략 없이 어떻게 영업을 합니까. 그게 본부와 현장의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목표는 금융의 본질과 기본에 충실하는 것”

마지막 메뉴로 사골 국물에 말아낸 칼국수가 나왔다. 하나금융을 어떻게 키워 갈지 물었다. “미래에 대한 투자가 제일 먼저입니다. 당장 이익이 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저에 대한 평가가 나올 때 ‘그때 김정태가 기본을 닦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톱’으로서의 외로움도 전했다. “설악산 대청봉에 가보셨습니까. 최고봉에 오르기 직전 마지막 산장에서는 라면도 먹고 쉬었다가 서서히 올라갑니다. 해가 아주 따뜻하고 좋아요. 그러다 정상에 서면 바람이 무지막지 합니다. 행장 때는 그래도 따뜻했어요. 외풍을 막아주는 회장이 있었으니까요. 가장 꼭대기에서는 찬바람이 심합니다. 위로 갈수록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김 회장은 하나은행 창립 멤버이지만 김승유 전 회장처럼 하나금융의 모태인 한국투자금융 출신은 아니다. 스스로도 ‘본류가 아니다’는 말을 한다. 그는 영업현장에서 숙이고 낮추면서 아래에서부터 인정받는 ‘김정태 스타일’을 만들었다. 강력한 카리스마 대신 부드러운 리더십으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입증한 셈이다.

마지막 잔을 부딪치며 40여년을 몸담으면서 깨친 금융의 본질을 물었다. “가장 기본 자세는 제조업 하는 분들을 애국자라고 생각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결코 함부로 까불지 않습니다. 금융이 제조업의 그림자로서 역할을 하도록 충실히 노력할 뿐입니다. 제조가 없는 금융은 없습니다.”김정태 회장의 단골집 대련집

사골 칼국수·생배추 보쌈으로 유명

통사골을 24시간 고아 우려낸 구수한 국물로 맛을 낸 칼국수집. 면 위에 소고기, 당근, 호박, 계란 지단 등 고명을 맛깔스럽게 얹어 내놓는다. 서울 관철동 파고다어학원 종로타워에서 청계천을 따라 청계3가 사거리 방향으로 50m가량 걸어가다 보면 나오는 왼편 첫 번째 골목 어귀에 있다. 간판과 인테리어는 수수하기 그지없지만 맛집으로 소문나 명사들이 많이 찾는다.싱싱한 생배추와 촉촉하게 삶아낸 보쌈이 어우러진 생배추보쌈도 잘 나간다. 점심 메뉴는 생배추보쌈, 제육, 파전, 칼국수 등이다. 저녁에는 점심 메뉴에다 모둠전, 북어찜, 홍어찜, 낙지볶음, 두부김치, 육회 등을 먹을 수 있다. 막걸리 한잔 하기에 제격인 안주가 많다. 칼국수는 6000원, 생배추보쌈은 크기에 따라 1만5000~2만5000원이다. 나머지 안주류도 9000~2만5000원으로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 9시30분까지 문을 열고 일요일은 쉰다. (02)2265-5349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