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푸어 구제' 은행권 공동참여 추진

금감원 "독자 대책으론 한계"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 방식…SPC 세워 임대료 재원 마련
긴급구제 대상 5만~8만가구…2년간 임대료 못내도 거주 가능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들이 내놓는 보증 재원을 활용해 외부 기관투자가를 끌어들이는 것을 골자로 한 ‘은행권 공동 하우스푸어 대책’을 마련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우리금융지주가 독자적으로 내놓은 하우스푸어 구제책인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trust & lease back·신탁 후 임대)’의 한계를 지적하며 “은행권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연기금 기관투자가 등 외부 투자자가 은행 신탁계정에서 유동화한 수익증권 일부를 매입하는 방식의 ‘은행권 공동 하우스푸어 대책’을 마련했다. 조만간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와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은행 돈으로 투자자 보증

금감원이 마련한 대책은 하우스푸어가 집에 대한 관리·처분권을 은행 신탁계정에 맡기고 수익증권을 나눠 가진 후 은행이 채무자에게 다시 집을 임대하는 기존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과 골격은 비슷하다. 다만 은행권 공동으로 세운 SPC(특수목적회사)를 거쳐 수익증권 일부를 연기금이나 증권사,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에 ABS(자산유동화증권) 형태로 매각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시중은행들은 일정 규모의 자금을 보증 재원으로 갹출한다. 예를 들어 은행들이 1조원을 보증 재원으로 모으면 그 10배인 10조원에 이르는 외부 투자자의 원리금 보증이 가능하다. 보증이 이뤄지면 외부 투자자는 안심하고 유동화한 수익증권을 거래하는 SPC에 자금을 넣을 수 있고, 이 돈은 다시 은행 신탁계정에 있는 에스크로(escrow) 계정으로 들어가 임대료의 보증금 성격으로 활용된다.

이런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 채권의 10%에 해당하는 수익증권을 외부 투자자에게 매각하면 주택을 신탁한 차주는 최장 2년간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들은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을 활용할 때 차주가 납부해야 할 임대료 수준을 연 5%로 잡고 있다.금감원은 은행권 공동으로 긴급히 구제할 1순위 주택 규모는 5만~8만가구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이 40%를 넘고 담보인정비율(LTV)이 80%를 초과하는 주택 중 6개월 이상 연체돼 경매가 임박한 바닥권 주택을 거둬들이면 집값 폭락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DTI 40% 초과 주택은 약 70만가구, LTV 80% 초과 주택은 18만5000가구로 추산되고 있다.

○은행별 독자 추진으로는 ‘한계’금감원이 이 같은 카드를 준비 중인 이유는 우리금융이 내놓은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이 △2개 이상의 은행에 주택담보대출을 가진 하우스푸어를 구제할 수 없고 △지원 대상이 700가구 정도로 제한적인 데다 △6개월간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차주의 주택은 바로 공매 처분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서다.

금감원은 이미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과 이 같은 대책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은 물론 은행 등에서 독자적인 하우스푸어 대책이 나오고 있는 만큼 금융회사를 감독·검사하는 금감원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시행 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금융위를 비롯한 정부 내에서 여전히 전면적인 하우스푸어 구제 대책을 시행할 시기인지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의 다른 관계자는 “공적 보증기관이 보증에 나서는 문제는 사실상 재정을 투입하는 것인 만큼 아직까지 시기상조”라며 “주택담보대출로 수년간 큰 이익을 거둔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보증 재원을 분담하는 방식이 우선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창민/류시훈 기자 cmjang@hankyung.com

■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

trust & lease back. 신탁 후 임대. 대상 주택을 신탁사에 맡겨 관리하는 방식이다. 법적 소유권은 집주인이 갖고 신탁사는 관리·처분권을 갖는다.■ 에스크로

escrow. 구매자와 판매자 간 신용관계가 불확실할 때 상거래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제3자가 중개하는 매매 보호 서비스다. 온라인 쇼핑 때 거래대금을 제3자에게 맡기고 배송 확인 후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라는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