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부활 뒤엔 '강 고집' 있었다
입력
수정
"어려울 때 희망 준 영웅 내버려둬선 안돼"
강만수 KDB금융 회장 지난해 공식후원 결정…대회중엔 "내일은 더 원더풀" 문자 보내
‘그레이트! 기도대로 원더풀 선데이. 후배들과 팬들에게 큰 선물. 정말 잘했다. 나연이(최나연 선수)와 함께 한턱 쏠게. 회장.’
프로골퍼 박세리 선수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KDB대우증권 클래식에서 우승한 지난 23일 오후 강만수 KDB금융그룹 회장은 문자 메시지로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KDB금융이 후원한 뒤 처음으로 들려온 우승 소식이었다.강 회장은 이번 대회 내내 박 선수를 멀리서 응원했다. 박 선수가 선두로 치고 나간 지난 22일 2라운드 직후엔 ‘오늘 원더풀, 내일 더 원더풀’이란 문자를 보냈고, 23일 오전엔 ‘뷰티풀 선데이, 원더풀 선데이. 교회에서 기도했다’며 선전을 빌었다.
강 회장은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프로암 대회에서 함께 라운딩할 때 (박 선수가) 코스가 맘에 든다고 하더니 결국 일을 냈다”고 말했다.
KDB금융의 박 선수 후원은 강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지난해 여름 박 선수가 스폰서 없이 투어생활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바로 후원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실무진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주변의 시선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성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후원하면 홍보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강 회장이 ‘고집’을 부렸다. 그는 “홍보효과를 먼저 생각하지 마라. 박세리는 우리 국민이 IMF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을 때 꿈과 희망을 안겨줬던 영웅이다. ‘잊혀진 영웅’이 되도록 내버려 둬선 안된다”며 후원을 결정했다. 후원 규모도 국책 금융회사로서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충분히 하라’고 했다.
KDB금융의 한 관계자는 “박 선수는 한국 여자 프로골프의 개척자인 만큼 ‘아시아의 파이어니어 은행’을 지향하는 KDB의 이미지와도 맞아 떨어진다고 봤다”며 “게다가 아시아인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미국 LPGA 4대 메이저대회 우승)에 도전하고 있었고, KDB 역시 민영화와 기업공개라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어 상통하는 점이 많았다”고 당시 후원 배경을 설명했다.
강 회장의 이런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박 선수는 작년 9월5일 계약식에서 “아직도 저를 가능성 있는 선수로서 인정해주시니 고맙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후 대회에선 잇따라 좋은 성적을 거두며 부활을 예고했다. KDB금융의 후원 이후 박 선수는 미국 LPGA투어에서 메이저 대회인 US오픈(7위) 나비스코챔피언십(8위) 에비앙마스터스(내년부터 메이저대회로 승격·8위)를 포함한 6개 대회에서 ‘톱10’에 들었다이날 강 회장의 서울 여의도 집무실을 찾은 박 선수는 “어려울 때 믿고 기다려준 회장님과 KDB 가족 덕에 우승하게 돼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것보다 더 기쁘다”고 말했다. KDB금융의 후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 때 나를 믿어주는 곳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했다”며 “강 회장님은 스폰서 회사의 대표라기보다 부모의 심정으로 도닥여줬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류시훈/장창민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