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구원등판 했지만 '왕창' 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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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떨어질 때 노려 저가매수…비중 늘리기 나서
4조 실탄 여력…"기업 실적 확인 후 천천히 풀 것"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들이 최근 증시에서 순매수 규모를 늘리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경기부양책 등으로 증시 여건이 개선되면서 올해 목표한 주식 비중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연기금 관계자들은 “아직 글로벌 경제지표와 한국 기업 실적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상황을 봐 가면서 서두르지 않고 자금을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금 주식 순매수 ‘시동’25일 코스피지수는 12.03포인트(0.60%) 하락한 1991.41에 마치며 3거래일 만에 2000선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 24일 약 1600억원을 순매수하며 코스피지수를 1977에서 2003까지 끌어올렸던 연기금은 이날도 1589억원을 순매수하며 순매도를 보인 외국인의 빈자리를 채웠다. 연기금은 상반기에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688억원을 팔았지만 지난 7~8월 1조7806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달 들어선 유가증권시장에서 7269억원 순매수했다. 특히 최근 이틀 동안 코스피지수가 장중 하락한 틈을 노려 3184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주식 비중 채우는 과정
연기금은 글로벌 경기부양책이 발표되면서 한국 증시의 하락세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 주식 비중을 서서히 늘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올해 한국 주식 투자 비중 목표치는 19.1%인데 현재 비중은 17%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찬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이번달에 주식 직접투자와 위탁 운용에 6000억원씩 총 1조2000억원을 배정했다”며 “다음달 자금집행 계획도 이번주 열리는 투자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학연금도 현재 한국 주식 투자 비중이 20%로, 올해 목표치인 23%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태 사학연금 주식운용팀장은 “한국 주식 직접 운용과 위탁 운용을 합쳐 2조원 정도”라며 “상반기 꾸준히 주식을 샀고 최근 주가가 하락하면 사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위탁운용사 분기 평가를 앞두고 위탁운용사들이 투자를 진행하며 수익률 관리에 나서는 것도 연기금 순매수의 원인으로 풀이된다.◆자금 여력 4조원 추산
연기금의 양대 축인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이 연말까지 추가로 한국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은 4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연기금이 단기간 대규모 자금을 증시에 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3차 양적완화(QE) 발표 이후 현재까지 연기금의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에는 삼성전자 현대차 등 수출 대표주와 함께 신한지주 GKL 우리투자증권 등이 들어 있다. 곽중보 삼성증권 연구원은 “저평가된 금융·증권주나 중국 관광객 방문 모멘텀이 있는 GKL 등이 순매수 상위 종목에 있다는 것은 방어적인 포트폴리오로 볼 수 있다”며 “주가가 소폭 하락하면 저가 매수에 나서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기금 관계자들도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순차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본부장은 “유동성은 풍부하지만 경기가 안 좋고 기업 이익은 안 늘어나는 양면성이 있는 상황”이라며 “박스권에서 시장이 빠질 것 같지 않지만 크게 올라갈 것 같지도 않는 상태가 다음달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 팀장도 “(시장) 하락은 제한적일 것 같은데 펀더멘털이 어떻게 변할지 관심”이라며 “자산의 3% 정도는 한국 주식에 추가 투자할 수 있지만 경기지표가 시장 기대만큼 개선되는 모습이 안 보여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