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으로 전락한 창덕궁 '빈청'

일제, 순종 차고로 바꾸고
문화재청, 2년전 카페 허가
세계문화유산 관리 소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사적 제122호) 내 전통 건축물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시대 대신들의 회의 공간으로 쓰였던 빈청(賓廳)이 현대식 카페로 개조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담당 부처인 문화재청은 원상복귀를 하겠다던 국회 국정감사에서의 청장 답변을 2년 이상 이행하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 때 왕실 의례가 주로 열렸던 창덕궁 인정전의 오른쪽 아래편엔 커피 등을 판매하는 카페가 2010년 5월부터 들어서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 2품 이상 대신들과 당상관(정3품 이상)들의 회의 공간인 빈청이었다. 조정 관료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는 창덕궁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1820년대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동궐도’(국보 제249호)에도 등장한다.빈청은 1910년 한ㆍ일 강제병합 이후 일제의 궁궐훼손 정책으로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 황제가 타고 다녔던 자동차를 전시하는 어차고(御車庫)로 이용됐다. 2007년 고궁박물관으로 이 자동차가 옮겨진 뒤 빈 공간으로 남았다. 이후 문화재청은 2010년 4월 관람객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빈청에 카페 설치를 허가했다. 당시 열린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회 승인을 받았다.

기자가 추석 연휴 기간 중 이곳을 찾았을 때 창덕궁은 무료 개방으로 인해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빈청 내부는 커피숍과 함께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어 빈청의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과거 이곳이 빈청이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문도 없었다. 테이블 곳곳엔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일제가 훼손…원형 복원 약속 2년간 안 지켜일제가 의도적으로 훼손한 궁궐을 또다시 카페로 용도 변경한 건 건물의 역사적인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가 빈청을 먼저 어차고로 바꿨기 때문에 카페 개조엔 문제가 없다”는 게 문화재청의 설명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기록엔 나와있지 않지만) 발굴 결과 조선시대 빈청은 일제시대 때 이미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관람객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어차고를 개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창덕궁에 있는 전통 건축물을 동궐도에 나타난 그대로 복원하겠다는 문화재청의 기존 입장과 어긋난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도 문화재청이 카페 설치를 허가한 것을 놓고 “역사관이 없는 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이 같은 지적에 당시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카페를 철거한 후 원형대로 복원하겠다”고 답변했지만 2년이 지난 현재도 카페가 버젓이 운영되고 있다.이에 대해 최이태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장은 “일제가 훼손한 궁궐 건축물을 원형 복구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카페 위탁기간이 끝나는 2014년에 빈청을 원형대로 복원할 계획”이라고 뒤늦게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