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사주만 놓고 보면 장관 팔자 아니래요"

한경과 맛있는 만남

29년간 농정 외길…2002년 한·중 마늘파동때 모든 책임 총대 메고 '사퇴'
퇴직후 먹거리 운동 등 펼쳐…9년만에 장관으로 컴백…당시 "꺼진 불도 다시보자" 유행
'아스팔트 농민'은 농민 아니다…생산농가와 언제든 대화할 터

과천시의 허름한 단지 내 상가. 식당 간판이 없다. 긴가민가 계단을 오르니 빛바랜 플래카드가 입구를 안내한다. ‘한국음식 구단지’. 반질반질한 시멘트 바닥에서 뭔가 옛 내음을 맡은 순간, 미닫이문이 열리고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느라 고생하셨죠? 여기가 제 오랜 단골입니다.”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인터뷰 제안을 듣자마자 여길 떠올렸다고 했다. 가정식 백반을 차려내는 집이다. 국내 먹거리 산업의 최일선에 선 베테랑 관료치고 좀 평범한 곳을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식 세계화의 이정표가 될 ‘비장의 신메뉴’라도 나올까 기대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상차림은 의외로 괜찮았다. 도토리묵, 가지무침, 느타리볶음부터 고등어조림, 제육볶음까지 육해공 먹거리가 아쉬울 것 없이 올랐다. 서 장관은 뱅어포 반찬을 권했다. 한 조각 씹으니 고소하니 입맛이 돌았다. “옛날에는 흔했는데 지금은 일반 식당에서 맛보기 어려워요. 모두 이땅에서 난 향토 음식들입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1인당 7000원이지요.”

20년 동안 똑같은 가격이라니…쉽지 않은 일이다. 맛이나 품질이 떨어지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서 장관은 전혀 아니라고 했다.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희미하게 웃었다.

◆농대 나와야 농림부 들어가는 줄 알았지그는 충북 청주 출생이다. 명문이라는 청주고등학교에서 공부 잘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과수원집 셋째아들 서규용은 농업에 끌렸다. “다 떨어진 난닝구(러닝셔츠)를 걸치고 꽁보리밥을 먹는 게 흔한 풍경이었어요. 우리 농촌을 살기 좋게 만드는 게 그때부터 꿈이었지요.” 농림부에 들어가려면 농대를 졸업해야 하는 줄 알았다. 고려대 농대에 입학했다.

‘깡소주’를 즐기던 활달한 대학생 서규용이 농정 입문을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은 군대를 제대한 이후였다. 학교 신문에서 1972년 제8회 기술고등고시 일정을 보자마자 도서관에 자리를 폈다. 비료학, 토양학보다는 농업경제, 경영 이런 책들이 끌렸다. 모조리 사서 독학을 했고 그 해 합격했다.

전작과장, 농산원예국장 등을 거쳐 농촌진흥청장, 농림부 차관까지 29년간 농정에 매달렸다. 쌀 직불제도와 농업재해보험 도입 등 굵직굵직한 사안을 처리했다.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서로 부딪쳐도 정면 돌파했다. “잘 안 풀리고 답답할 때는 고향의 과수원을 생각했죠. 소신대로 하다 정 안 되면 그냥 농사나 지어야지 생각했더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그러던 그가 공직에서 물러났다. 2002년 7월 한·중 마늘 파동 때였다. 과거 양국 마늘 협상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연장 불가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농민들이 거세게 들고 일어났다. 관련 부처인 외교통상부와 농림부는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모양새였다. 차관이던 그가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던졌다.

협상 내용을 몰랐던 그가 굳이 총대를 메야 했을까. 여기서 그는 ‘행정은 타이밍’이란 지론을 폈다. “그때 누군가 책임을 지지 않았다면 국민들 분노를 수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공직자가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치면 다같이 죽지요.”

◆농업을 정치로 풀면 안돼문득 우리 식탁에 범람하고 있는 중국산 식재료와 토종 재료들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배추김치를 집어 들더니 잎사귀에 푸른 색이 있으면 국산 김치라고 했다. 그런 식으로 몇몇 반찬들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마늘 파동이 그랬듯 농정 이슈는 금세 갈등으로 불붙는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광우병 파동이 정국을 흔들었고, 지난해 취임한 서 장관에게도 난제가 닥쳤다. 공급 과잉과 사료값 급등으로 인해 소값이 폭락하자 축산농가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시위장에 소를 끌고 나타난 농민들을 보면서 그는 ‘축산인으로서 저건 아니다’고 생각했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으로 소를 시위장에 끌고 올라오면 그 지역 농림 예산을 깎겠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그 농가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했다. 보도가 나간 후 굶주린 소를 시위에 이용하는 사례는 보기 힘들어졌다. “농업을 정치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요구가 거세다고 모두 들어준다면 더 꼬이게 돼 있어요.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아스팔트 농민’은 엄밀한 의미에서 농민이 아니라고 봐요. 진짜 소를 키우고 벼농사를 짓는 생산자들과는 언제든지 가슴을 열고 대화할 것입니다.”

지난 4월 미국 중부에서 다시 광우병 소가 발생했다. 불안해 하던 국민들이 검역 중단을 외쳤지만 그는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서 장관이 기자들에게 광우병의 유래와 특성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술술 막힘이 없었다. 국민을 설득하느라 수없이 되풀이한 내용일 터였다.

◆장관 될 사주는 아니다

목도 축일 겸 막걸리 잔을 새로 채웠다. 파전은 금세 동이 났다. 실파에 당근, 고추가 들어간 게 고작인데 그 심심한 맛에 자꾸 젓가락이 갔다. 식당 주인이 접시를 다시 내오는 사이, 시계를 지난해 5월로 돌려봤다. 차관을 그만두고 9년째. 거의 잊혀진 이름이었던 그가 장관으로 ‘공직 2막’을 시작했을 때다.

과천 청사에서는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로 깜짝 인사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이 각별한지 물었더니 ‘서울시장 시절에 행사장에서 마주쳤던 게 전부’라고 했다. 처음엔 그도 자신을 왜 불렀을까 궁금해 했다.

힌트는 나중에 나왔다. 이 대통령은 그에게 사령장을 주면서 ‘서 장관은 많은 단체에서 일했구만’라고 한마디 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농식품부를 떠나 있을 때도 농업과 끈을 놓지 않았다. 농어민신문 사장을 했고, 충북 농업연구원장을 무보수로 맡았다. 지역 먹거리 캠페인인 로컬푸드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이 같은 열정이 농정인 서규용의 부활에 디딤돌이 된 셈이다.

9년간의 외길이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농정에 대한 꿈을 갖고 선거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적도 있다. 틈틈이 역학을 공부하는 게 낙이었다. 기자들의 생년월일과 생시를 묻고 즉석에서 사주풀이를 하는 모습에서 ‘프로’의 냄새가 났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서 장관 자신의 사주는 어떨까.

뜬금 없는 질문에 그는 씩 웃었다. “내 사주는 장관 사주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장관이 됐느냐. 사주는 70%에 불과하니까. 나머지 30%는 자기 노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같은 ‘점 복(卜)’자를 타고 났는데 어떤 사람은 칼을 차고, 어떤 사람은 깡통을 차지요.”

일본서 한국농업 배우러 와…한중FTA, 위기 아닌 기회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

그는 장관을 맡은 후 매주 토요일 농어촌 현장을 방문한다. 해외 일정 탓에 한 번, 추석 연휴가 겹친 한 번을 빼고는 빠진 적이 없다. 추석 직전이던 지난 주말에도 그냥 넘어가기가 아쉬웠는지 청사 미화원 30여명과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여름 태풍 볼라벤이 몰아쳤을 때는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고향집 과수원에서도 배가 많이 떨어졌다.

이럴 때는 ‘갈 길이 멀구나’라는 생각에 아득해진다고 했다. 기후 변화 탓에 재해가 상시화하는데 농업 기반은 아직 후진적이어서다. “요즘은 논에 벼 대신 참외를 많이 심잖아요. 문제는 물이 들어오면 잘 안 빠진다는 거예요. 벼는 몰라도 참외는 바로 죽어요. 성주가 참외 주산지인데, 한 번 물이 찬 적이 있어요. 하루 만에 전국 참외값이 들썩였지요. 배수시설 등 꾸준한 투자가 답입니다.”

농정 개혁으로 들어가면 그도 철저히 효율을 따진다. 취임 직후 그는 농업 경영체에 대한 보조금을 장기 저리 융자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농민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연착륙에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농민들도 열심히 하면 오히려 빚을 지지 않으니까 유리하지요. 수산 분야도 규제를 많이 풀었어요. 어민을 보호한다면서 규제만 하면 일본 수산업처럼 퇴보합니다. ”

◆경제팀의 ‘큰형님’

누룽지밥과 무국이 올랐다. 다른 걸 넣지 않은 맑은 국물인데 무척 개운했다. 속이 따뜻해지니 느긋해진다. ‘살기 좋은 농촌’이라는 서 장관의 꿈은 어디까지 달성됐을까 궁금했다. 고령화와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 현실을 위협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가구당 경지면적이 1.47㏊예요. 미국은 186㏊, 유럽도 20~30㏊에 이르죠. 쌀 보리 같은 토지 농업으로는 상대가 안 됩니다. 자본집약적, 기술집약적 농업밖에 답이 없어요. 종자 개량, 연구·개발, 시설투자가 맞아떨어지면 네덜란드, 덴마크처럼 작지만 강한 농업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내 농업의 최대 위기로 꼽히는 한·중 FTA도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경쟁력 있는 수출 품목을 키운다면 ‘세계 10대 농식품 수출국’이 되는 것도 먼 미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한국 농업을 배우겠다고 옵니다. 개방을 이렇게 해놓고도 어떻게 농업을 유지하는지 묻더군요.”

서 장관은 현직 장관 가운데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경제장관 가운데서는 ‘큰형님’이다. 현 경제팀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했다.


서규용 장관의 단골집 구단지 가정식 백반 주메뉴…점심도 저녁도 1인 7000원

과천시 중앙동 주공아파트 1단지 내 상가 2층에 있는 한정식집. 지하철 4호선 과천역에서 아파트 단지 쪽으로 잠깐 걸어들어가야 한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있는 과천 종합청사와는 걸어서 10~15분 거리다. 가정식 백반이 주메뉴다. 도토리묵 두부 고추장아찌 시래기무침 고등어조림 등 상에 오르는 반찬이 다양하다. 계절에 따라 구성이 조금씩 바뀐다. 조미료를 쓰지 않아 담백하다. 식사 마지막은 된장찌개와 누룽지밥, 무국으로 든든하게 장식한다.

점심 저녁 똑같이 1인당 7000원이다. 단골들의 ‘특별 주문’에 따라 닭볶음탕과 제육볶음 같은 단품을 내놓기도 한다. 낮에는 호주머니가 가벼운 공무원과 동네 주민들로 가득 찬다. 방이 많아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고위 공직자들도 부담없이 예약한다. 저녁은 9시 전에 일찍 마치는 편이다.‘구단지’라는 이름 탓에 주공 9단지를 찾았다가 헤매는 손님도 있다. 9단지 아파트는 부림교를 사이에 놓고 식당과 떨어져 있다. 거북 구(龜)자를 써서 ‘龜丹池’란다.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식당도 내년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02)502-0022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