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유업이 내수산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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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산업부 기자 hit@hankyung.com올해 한국의 수출 1위 품목은 무엇일까. 자동차도, 무선통신기기도 아니다.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10년 반도체, 작년에는 선박이 각각 1위였지만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석유제품 누적 수출액은 415억달러에 육박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7% 늘었다. 국가 전체 수출액(4084억3000만달러)의 10.2%를 차지한다. 지난달에는 전체 수출액이 작년 동기보다 1.8% 줄었지만, 석유제품은 24% 늘었다.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비(非)산유국에서 거두고 있는 성과다. 석유제품이 ‘수출효자’ 품목으로 바뀌었는데도 ‘정유업=내수산업’이라는 오해는 여전하다. 최고의 수출 실적에도 ‘공공의 적’ 취급을 받는 정유사들의 속이 타들어 가는 이유다.
석유제품을 수출 1위로 올려놓은 것은 앞을 내다보고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한 국내 정유회사들의 공(功)이다. 정유사들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재원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미래를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저급 중질유를 재처리해 휘발유·경유 등 경질유로 전환시키는 고도화 설비에 투자했다. 일찌감치 정제능력을 늘려 ‘규모의 경제’를 갖춘 데 이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수익성을 높여왔다.
정유업이 대표적인 수출산업으로 성장했지만 정부는 수출 경쟁력 강화보다는 ‘기름값 잡기’에만 급급하다. 가격 인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알뜰주유소’ 확대와 석유 혼합판매 허용 등으로 정유사를 압박하고 있다.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이유로 수입 석유제품에 세제 혜택까지 준다. 수입품에 붙는 3%의 할당 관세를 없애준 한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올초 1%에도 못 미치던 일본산 경유의 시장점유율은 10%대로 올라섰다. 국내 정유사들이 품질 경쟁력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까지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마당에 국내 경유 수요는 일본에 기대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유업계는 정유사를 둘러싼 뿌리깊은 불신과 오해에 분통을 터뜨린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산업이 단순히 원유를 사와 주유소에서 기름을 파는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라며 “수출 기여도 1위의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출 둔화 속 구원투수로 제대로 평가해 달라는 하소연이다.
윤정현 산업부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