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 氣 살리는 정책이 먼저다

"기업유연성·속도가 경쟁력 좌우
시장 중시하는 정책일관성 절실
정부 조직개편 논란은 실속없어"

황호진 < 삼화콘덴서 대표 >
유럽 재정 위기에 따른 세계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걷히지 않고 있는 등 대내외 경제 여건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실정이다. 정부의 발표를 보더라도 수출은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고, 내수 역시 저조해 최근 다양한 내수 진작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올 상반기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2.2%포인트 수준으로 작년 연간 성장기여도 5.0%포인트를 크게 밑돈다고 한다.

이처럼 어려운 환경 아래에서 기업인들은 하루하루를 그야말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을 석권할 첨단 신제품의 연구·개발(R&D) 프로젝트 구상, 자금조달 방안 강구, 창의적 인력 양성 및 확보방안, 미개척 시장 진출방안 등 하루 24시간으로는 부족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12월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백가쟁명식 의견과 입장이 공약 또는 정책 아젠다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국민 복지 향상을 위한 공약은 난무하나 그 재원을 조달하려면 튼튼한 재정여건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국가의 재정은 기업과 개인이 납부하는 세금으로 충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증진이 개인을 종국적인 정책 타깃으로 한다면 기업을 위한 정책 타깃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 답이 경제민주화라면 이는 기업인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추상적이고 남의 다리 긁기 식의 섣부른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정부 조직개편 논의도 마찬가지다. 정보기술(IT) 산업을 담당할 정부조직에 대해서 한쪽에서는 정보통신산업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과거 정보통신부와 같은 전담부처 설치를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IT융합산업의 지속적인 육성과 발전을 위해서는 현행체제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논쟁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정작 산업계의 의견은 주인 자리에 있지 못하고 해당부처 출신의 전직 관료 및 유관단체들이 전면에 등장하는 주객전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대선이 치러지는 5년을 주기로 매번 반복적으로 정부 조직개편이 논의되고 있으며, 그 배경이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래가지고는 국가의 지향과 정책의 일관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이로 인해 기업이 겪을 혼란을 생각해 보면 개탄스러운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

현재 우리는 초연결(hyperconnectivity), 빅 데이터(big data)로 대변되는 스마트 시대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소통이 가능한 초연결 사회가 가속화되고, 산업의 핵심 가치가 생산능력에서 시장 소통능력으로 바뀌어 가면서, 이에 대응하는 기업의 유연성과 속도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명분이 뭐가 되었든지 간에 조직개편이 시작되면 기존 정부부처와 신설 부처 사이에 업무 분장 및 영역 조정을 위한 부처 간 지루한 줄다리기가 진행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전자·IT산업 정책의 표류, 시의성 상실 등 정책 혼선은 물론 이에 따른 폐해를 산업계가 업보처럼 떠안아야 하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과거와는 달리 우리나라 기업도 글로벌 경제의 당당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실감하지만 아직도 국민소득 3만달러, 무역규모 2조달러 달성을 위해서는 할 일도 많고 정부나 정치권이 도와야 할 일도 많다. 최근 초대기업들의 특허분쟁에서 보듯이 기업의 사활을 건 싸움은 세계시장 도처에서 일상사로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진정 국민소득 3만달러와 무역 2조달러시대 진입을 원한다면 경제민주화니 IT 전담부처 설치와 같은 한가한 담론에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그야말로 시장을 주시하면서 정책 수요자적 입장에서 기업의 기(氣)를 살리는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말 그대로 기업을 위하고 국민을 주권자로 모시는 정부와 정치가 이뤄질 때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경제민주화도 실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호진 < 삼화콘덴서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