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산마리노 축구팀과 다이슨 청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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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민 산업부 차장 smyoon@hankyung.com2014 브라질 월드컵 축구대회 예선이 세계 곳곳에서 한창이다. 지난주 유럽에서는 영국의 경기가 있었다. 상대는 약체팀 산마리노. 이탈리아에 둘러싸인 인구 3만명의 유럽 최소국 중 하나다. 감독은 물론 선수 대부분이 따로 직업이 있는 아마추어들이다. 주전 골키퍼가 경기 직전 갑자기 부상을 당해 은행원인 후보 골키퍼가 일하다 말고 달려온 적도 있다. 결과는 당연히 영국의 5 대 0 대승이었다.
산마리노 대표팀이 1986년 출범 이후 지금까지 거둔 A매치 전적은 116전 1승4무111패. 그렇지만 이 팀은 지금까지 월드컵 예선과 유로컵 예선에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개근 출전’하고 있다. 산마리노에 유일한 승리를 안겨다 준 팀은 알프스 산중에 있는 ‘우표의 나라’ 리히텐슈타인이다.산마리노만큼 축구 실력이 형편없는 리히텐슈타인도 끊임없이 월드컵과 유로컵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축구 열정은 영국의 한 작가가 2002 월드컵 유럽 예선의 이 나라 경기만 쫓아다니며 제목을 우표에 빗대 《Stamping Grounds》란 책을 냈을 정도다. 당시 리히텐슈타인은 8경기 모두 영패를 당했다.
5126번 실패가 낳은 ‘다이슨’
유럽에 산마리노와 리히텐슈타인 축구팀이 있다면, 한국엔 서울대 야구부가 있다. 2004년 9월1일은 이 팀으로선 잊을 수 없는 날이다. 201번째 도전 만에 첫승이자 지금까지의 유일한 승리를 따낸 날이다. 그 제물이 된 광주 송원대 야구팀에겐 치욕의 날이지만 당시 서울대팀 주장 신동걸 씨에게 1승의 의미는 이렇다. “그때 신문 기사를 모두 스크랩해 놨는데, 이를 볼 때마다 남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해도 도전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깁니다.” 서울대 야구부 출신답게 신씨의 서른살 짧은 삶에도 스토리가 있다. 청주 세광고 야구부원이던 그는 3수 끝에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에는 일본의 신일본제철 실업팀에서 2년간 사회인 야구 선수 생활을 한 뒤 지금은 국내 최대 해운회사인 한진해운에 근무하고 있다.실패를 특권으로 봐줘야
아마추어 스포츠팀의 도전과 실패에는 그나마 풋풋한 낭만이라도 있다. 인생이 걸린 프로의 세계는 처절하다. 영국의 가전업체 다이슨사의 제임스 다이슨 회장은 먼지봉투 없는 진공 청소기 ‘다이슨 듀얼 사이클론’을 개발하는 데 5126번의 실패를 맛봐야 했다. 15번째 모형을 만들었을 때 셋째가 태어났고, 2627번째부터는 빚더미에 눌려 동전 한닢에도 민감해졌으며, 3727번째는 급기야 아내가 생업 전선에 나서야 했다. 그가 엄청난 금전적, 정신적 시련과 좌절을 견뎌내는 데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이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사이클론’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이건희 회장의 어록 중 ‘마누라와 자식 빼 놓고 다 바꾸라’는 말만큼 멋진 말 가운데 하나가 ‘실패는 삼성인의 특권’이라는 표현이다. 실패를 딛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권은 열정과 용기, 그리고 자부심이다. 리히텐슈타인 축구팀 이야기를 쓴 영국 작가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자부심이 그들을 경기장으로 불러낸다고 했다.다이슨 회장에게는 영생(永生)의 프로젝트가 있다. 그의 사후에 ‘다이슨’이라는 이름이 진공청소기를 뜻하는 보통명사이자,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는 동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원대한 포부다. 실패를 성공을 향한 특권으로 여기고, 기다려줄 줄 아는 그런 사회, 기업 문화를 꿈꿔본다.
윤성민 산업부 차장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