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기러기 부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
“40년을 같이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떨어질 수는 없습니다.” 뉴욕 메이시백화점 소유주 스트라우스의 아내는 1912년 타이타닉호가 가라앉기 시작할 때 아이와 여자들에게 우선 내준 구명정에 오르기를 거부했다. 자리가 부족해 타지 못한 남편과 헤어지느니 차라리 손잡고 바닷물에 잠기는 쪽을 택했던 것이다. 워싱턴 시의회 의장을 지낸 찰스 스넬링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다가 지난 4월 권총으로 함께 생을 접었다. 둘 다 81세였다. 자식들에게 “우리는 행복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다음 살지는 않기로 했다”는 편지를 남겼다.

이 정도면 한날한시 죽게 해 달라는 소원을 이룬 그리스 신화속 필레몬·바우키스 부부와 다를 바 없다. 백년해로(百年偕老)는 못했어도 해로동혈(偕老同穴)의 뜻은 이룬 셈이니까. 오래 같이 살다 보면 부부가 닮는다는 주장도 있다. 영국 리버풀대 연구진이 부부 160쌍의 사진을 섞어 놓고 닮은 남녀를 고르는 실험을 했더니 대부분 부부를 선택했다고 한다. 감정 표현이 서로 비슷해지면서 인상도 닮아갔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부부간 사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지는 모양이다. 결혼했지만 같이 살지 않는 ‘기러기 부부’가 10쌍 중 1쌍으로 10년 새 두 배나 늘었다는 게 통계청 발표다. 따로 사는 부부가 2000년 63만3000가구였으나 2010년엔 115만가구로 급증했다는 거다. 50대가 32만8000가구(11.4%)로 가장 많았고 40대(11.3%), 30대(8.4%)가 뒤를 이었다. 직장 때문에 떨어져 사는 주말부부가 급증한 데다 학업, 별거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도 350만쌍의 부부가 따로 살고 있다. 1990년의 170만쌍보다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중국에선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떨어져 지내는 부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결혼은 했지만 각자 따로 생활하다가 가끔 약속을 해 만나는 식이다. 결혼으로 인한 책임을 줄이고 실패해도 부담이 덜한 만큼 도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단다. 좋고 나쁨을 떠나 어느 나라든 사는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고/ 자장면집 한 켠에서 짬뽕을 먹는 남녀/ 해물 건더기가 나오자 서로 건져주며/ 웃는다 옆에서 앵앵거리는 아이 입에도/ 한 젓가락 넣어주었다/ 면을 훔쳐올리는 솜씨가 닮았다’(최영철 ‘인연’) 서로의 허물과 상처까지도 받아들이며 애증 엇갈리는 그들만의 교감을 쌓아가는 게 부부다. 이런저런 이유로 떨어져 산다 해도 그 교감만 놓치지 않으면 되는 게 아닐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