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 "음식·금융상품 공통점?…잘 만들면 고객 몰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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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만남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손실날 수 있는 투자 상품에 사후관리 개념 첫 도입
대우증권 사장 재직 5년간 휘청이던 회사 살리려 분투
생사고락 같이한 직원들과 함께 먹었던 국수 맛 못잊어
박종수 금융투자협회 회장(65)은 요즘 고민이 많다. 올해 내내 증시가 힘을 쓰지 못하면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회원사들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다.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를 할 때는 회사 일만 신경쓰면 그만이었는데, 협회장이 되니 금융투자업 전반의 문제들이 한눈에 들어오네요.”
한참 바쁘게 일하다 한숨 돌리고 싶을 때 누구나 찾고 싶은 곳이 있다. 박 회장에게 그런 집은 칼국수 수제비 등을 내놓는 밀가루 음식점이다. 헝가리 대우은행 임원과 은행장으로 8년이나 해외 생활을 한 사람치곤 의외다. “스테이크 같은 양식을 더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하니 “생존을 위해 먹는 내 스타일에는 밀가루 음식이 제격”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존을 위해서? 반쯤은 농담이었지만, 이어진 박 회장의 이야기는 그만큼 치열했다. 박 회장은 위기에 처한 회사를 되살리기 위해 동부서주 하던 대우증권 사장 시절,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들과 잠시 짬을 내 먹었던 국수 한 그릇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휘청이던 대우증권을 살리다
박 회장이 맛집으로 추천한 서울 공덕동 ‘안동국시’는 그가 1998년 대우증권 상무로 여의도에 ‘입성’한 이후 15년 동안 즐겨 찾는 식당이다. 식당을 처음 찾은 시기를 말하면서 화제는 자연스럽게 1999년 대우 사태 이야기로 이어졌다.
“당시 자금담당 임원이었는데 만기가 돌아온 어음을 다음날 새벽 2시에 가까스로 막고 퇴근하는 날이 많았어요. 대우그룹의 주거래 지점이 외환은행 남산지점과 옛 제일은행 (서울)역전지점이었는데, 여의도와 그곳을 뻔질나게 오가다 잠깐 들러 이곳에서 안동국시 한 그릇을 먹고 가곤 했죠.” 박 회장이 대우증권 사장에 취임한 것은 1999년 9월. 그후 대우증권이 어느 정도 살 만해질 때까지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증자를 하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었어요. 정부가 시중은행들을 설득해 출자를 해주기로 했는데 외국 자본이 대주주였던 한미은행만 결정을 미뤘습니다. 그래서 직접 이사회에 참석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회생 방안을 설명했어요. 황영기 당시 사외이사를 비롯해 이사들이 결국 사장의 열정을 믿고 도와주자고 했죠. 회사를 살리기 위해 CEO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던 것 같아요.”
증자를 마치니 이번엔 대우채 환매 사태가 터졌다. 그리고 산업은행의 출자를 받는 것까지 정신없이 3년이 흘렀고, 2년간 영업 정상화에 힘을 쏟고 나니 대우증권 사장으로서 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고 했다.
◆투자상품에 AS 도입한 ‘완벽주의자’하루하루 숨가빴던 대우증권 시절을 떠올리며 박 회장은 청주를 들이켰다. 가장 좋은 고기로 만들었다는 한우 삼겹수육 한 점을 김치에 얹어 안주로 삼았다. 박 회장은 “이 집은 강원도 철원에서 공급받은 고기를 갖고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수육을 만든다”며 “기름기가 약간 있고 퍽퍽하지 않아 술 안주로 제격”이라고 평가했다.
박 회장은 자신이 음식을 고르는 데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좋은 음식점을 판단하는 기준은 확고하다고 했다. “음식을 잘 만들고 음식의 질이 변하지 않으면 입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집만 하더라도 마포대로 건너편에서 10년 동안 영업하다 이곳 서부지방검찰청 주변으로 장소를 옮겼지만 손님이 전혀 줄지 않았어요. 맛이 좋으면 손님이 먼저 찾게 돼 있어요” 박 회장은 금융회사 상품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10년 가까이 증권사 사장을 해오면서 터득한 결론은 ‘손님이 먼저 찾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면 어떤 힘든 여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증권사 사장 시절이나 금투협 회장을 맡고 있는 지금이나 최고 수준의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체크하는 ‘완벽주의’로 유명하다.
박 회장은 회사를 살리고 정상화하는 게 우선이었던 대우증권 사장 때에 비해 우리투자증권 사장으로 일할 때는 일반적인 개념의 ‘기업 경영’에 좀 더 힘을 쏟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우리투자증권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종합자산관리 서비스 ‘옥토’를 개발한 것을 꼽았다. 이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당시 업계에서는 생소했던 금융투자상품에 판매 사후관리(AS) 개념을 도입해 관심을 모았다. 이는 그의 ‘완벽주의’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금도 거론된다.
원금을 보장하는 은행 예금과 달리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는 금융투자상품은 증권사 입장에서는 AS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다. 손실을 본 일부 고객이 이를 악용하면 소송을 당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금융상품에 AS를 하겠다고 나선 데에는 2004년 6월 대우증권 사장에서 물러난 뒤 6개월 쉬는 동안 아내와 함께 떠났던 유럽 여행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오스트리아 시골 마을의 한 작은 호텔에서 묵은 적이 있습니다. 관광산업이 발달한 나라답게 작은 호텔까지 서비스가 매우 좋았어요. 단 하루 숙박했는데도 나중에 ‘우리 호텔 서비스가 괜찮았느냐’는 내용의 엽서를 서울로 보내왔더군요.”
박 회장은 “작은 엽서 한 통에서 받은 감동이 그렇게 클 수 없었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완벽한 서비스를 하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도 대표 브랜드나 상품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협회에 와서 보니까 증권사가 은행이나 보험사에 비해 상품 개발 면에서 다소 밀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상품 개발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래도 대표 상품 몇 개는 꼭 필요합니다.” 박 회장은 증권사들이 수수료 깎기 경쟁을 하기보다는 고객들이 찾는 좋은 상품을 만들어 수수료를 더 받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 투자할 배짱 있어야 금융의 삼성전자 나와"
◆‘금융의 삼성전자’ 만들려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문어 요리와 녹두전 북어양념구이 등 안동국시 집이 자랑하는 요리가 차례로 나왔다. 요리가 올라올 때마다 박 회장의 추천사도 곁들여졌다. “북어양념구이는 어떻게 보면 흔한 음식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집의 북어구이는 다르지 않나요. 겉은 같더라도 특별한 맛을 내는 음식을 만들어야만 손님을 모을 수 있습니다.”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를 마시며 박 회장은 “돌이켜보니 금융 인생이 벌써 40년을 넘었네요”라고 말했다.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외환은행에 입사한 1970년부터 따져서다.
그에게 “금투협회장 업무를 제외하고 한국 금융산업과 관련해 요즘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떻게 하면 삼성전자 같은 세계적 금융회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나름대로 해답도 마련해 놓고 있었다. 한국 금융회사가 글로벌 금융사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최소 10년의 손실을 감수하고 투자할 수 있는 배짱’을 가장 먼저 꼽았다.
“금융회사를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시키려면 준비하는 기간만 5년은 잡아야 합니다. 수확을 얻으려면 5년이 더 필요하고요. 해외에 나가서 죽이 되건, 밥이 되건 10년을 투자할 생각이 아니라면 아예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면 안 됩니다.”
선진국보다는 한국에 비해 발전 단계가 낮은 이머징마켓이나 프런티어마켓에 먼저 진출해 ‘체력’을 키우는 것도 그가 꼽은 해외 진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이는 그가 1990년부터 8년간 헝가리 대우은행에 근무했던 경험에서 체득한 것이기도 하다.
“글로벌 금융회사로 성장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고객 데이터베이스(DB)입니다. 이를 가장 잘 확보하고 있는 곳이 바로 현지 금융회사들이지요.” 박 회장은 “아시아 후발국가 유명 금융회사의 일부 지분을 매입해 그 나라 기업에 대한 DB를 확보한 뒤 지분 비율을 늘려가는 단계적 접근법이 한국 금융회사들이 세계적 금융회사로 커 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인들 스스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했다.
“요즘 금투협회 직원들이 무척 피곤할 것입니다. 회장이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니까요. 직원들에게 항상 ‘열정을 갖고 당신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죠. 본인의 현 상황에 만족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을 항상 고민해야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박종수 회장의 단골집 안동국시 한우 삼겹수육·즉석 녹두전 대표 메뉴
서울 공덕동에 있는 안동국시 전문점. 서부지방검찰청 뒤쪽에 있다.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에서 걸어서 5~10분 거리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메뉴는 안동국시다. 양지머리 육수에 국수를 삶아서 고명을 얹어 내놓는다. 밀가루와 생콩가루를 섞어 면을 만드는 이 집의 대표 메뉴다. 가격은 7000원이다. 한우 삼겹수육과 즉석 녹두전도 즐겨 찾는 메뉴다. 가격은 각각 2만9000원과 1만원.
초벌구이를 한 뒤 마늘 생강 배 양파즙 등 10가지 이상의 재료로 만든 양념을 발라 구워내는 북어양념구이도 인기가 높다. 가격은 2만원이며 대관령 1등급 황태만 사용한다. 저녁에 오는 손님들은 10여가지 음식이 차례로 나오는 한정식 코스를 주로 찾는다. 계절별로 코스 메뉴가 달라지며 가격은 4만원 수준이다.모든 음식에 같이 나오는 김치도 이 집의 자랑거리다. 경북 영양군에서 공수한 태양초로 김치를 담근다. 콩나물은 직접 기르며 모든 음식은 육각수로 조리한다. 인공으로 만든 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 덕분에 서울시가 선정하는 하이 서울 ‘자랑스러운 한국음식점’에 뽑혔다.(02)3272-6465
송종현/김은정/윤아영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