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양적 완화와 포스트모던 세계경제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의 잇따른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아시아로 몰려들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2일 보도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자금이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태국 등으로 밀려들면서 이들 국가의 증시 통화 부동산이 모두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WSJ는 이에 따라 인플레가 내년 아시아 경제 최대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적완화의 영향에 대한 WSJ의 분석은 싱가포르 홍콩 등 소규모 개방경제에는 타당성이 있는 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에 대입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양국 모두 인플레는커녕 오히려 디플레이션 혹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2%대에 그칠 것이 유력한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내년에도 크게 개선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코스피지수는 미국의 3차 양적완화 이전보다도 떨어졌고 침체된 부동산 시장은 아직 살아날 기미가 없다. 양적완화의 당사국인 일본은 물론 미국 유럽의 경제사정도 크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글로벌 인플레 주범이며 투기자금의 단골 메뉴라는 국제유가는 최근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결국 돈을 풀어 경기를 살려보겠다는 양적완화는 지구촌 어디에서도 당초 기대하거나 예상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쪽에서는 자산거품을 일으키고 또 다른 쪽에서는 경기를 전혀 살려내지 못하는 비정형적이고 카오스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경제가 방향성과 질서를 상실한, 포스트모던적 대혼란을 겪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다. 단순히 돈을 찍어내는 방법으로는 결코 고용을 늘릴 수도, 경기를 살려낼 수도 없다. 오히려 거품의 확대재생산과 같은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지속적인 땀과 노력, 치열한 구조조정, 그 결과 생산성을 올리는 것만이 성장과 경기회복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양적완화라는 금융 포퓰리즘에 빠져 있다. 경제민주화에 매몰된 여야 대선후보들도 경기회복을 위해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