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의 무게를 잰다…감성의 과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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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org - 전상인아날로그 감성이 제품의 차별화 요소로 떠올랐다. 기업 간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피로감을 느낄 만큼 기술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면서 소비자들은 디지털 제품의 성능보다 감성적인 요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감성을 제품의 품질을 결정하는 한 요소로 인식하고 소비자의 감성을 만족하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감성을 마치 무게를 달 듯 측정하는 ‘감성의 과학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식품서 화장품·자동차로 확산
식자재 외관·질감 점수로 평가…화장품 촉촉·끈적함 수치로 표현
3차원 인체모형실험 '더 안락한 車' 설계
‘감성의 과학화’는 식품산업에서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식품산업의 관심이 영양가에서 맛으로 바뀌면서 기업들은 인간의 감각을 깊이있게 연구해 제품 개발에 적용했다. 이런 움직임은 이후 화장품 의류 자동차 건축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됐다. 최근에는 센서 기술과 데이터 분석 기술이 발달해 인간의 감성을 더욱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됐다.식품 기업은 맛을 수치화하고 표준화해 식품 품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맥도날드는 식자재를 외관 질감 냄새 등의 항목으로 나눠 9점 척도로 패널 평가를 하고 기준에 미달하는 것은 공급받지 않는다.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식품연구원은 고추장의 매운맛을 5단계로 표준화했다. 매운맛을 내는 주요 성분인 캡사이신 농도에 따라 ‘덜 매운맛’ ‘매운맛’ ‘매우 매운맛’ 등으로 구분했다. 맛을 과학적으로 측정해 표준화하면 식품 제조기기와 저장기기를 개발할 때도 활용할 수 있다. 압력 온도 시간 등이 음식 맛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최적화된 맛을 내는 조건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화장품 기업은 피부가 느끼는 촉감을 분석해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활용한다. ‘촉촉하다’ ‘끈적하다’ 등의 표현을 광고에 적용하기도 한다. 화장품 원료를 생산하는 기업은 원료가 피부에 닿는 느낌을 수치화해 화장품 기업을 상대로 한 영업에 활용한다.
자동차 기업들은 감성의 과학화를 통해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성 품질을 구현한다. 제너럴모터스(GM)는 실내 디자인을 할 때 3차원 인체 모형 실험을 한다. 이 실험을 통해 운전대와 페달 등을 어떤 위치에 놓았을 때 운전자가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지를 알아낸다. 전자식 브레이크를 밟을 때도 기계식 브레이크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한 자동차도 있다.산업 간 융복합이 활성화되면서 과학적으로 측정한 감성적 요소를 제품에 적용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에 적용된 터치스크린과 필기인식 기술도 사람의 손동작을 분석해 만들어낸 것이다.
감성의 과학화 시대를 앞서가기 위해서는 우선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제품의 성능과 감성적 요소를 결합할 수 있는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감성의 과학화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다. 인문학과의 통섭을 확대해 인간 중심의 사고와 발상이 기업 경영의 중심에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
전상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angin.chun@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