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내수 위축·反기업 정서…日의 '잃어버린 20년' 닮아간다

전경련, 경제 사막화 '7대 징후' 경고

취업자 2000년의 절반…가계빚 늘어 지갑 닫아
베이비부머 대거 퇴직…나라빚 늘어도 복지경쟁
“잠재성장률 추락, 고령화, 국가채무 급증 등으로 경제가 사막화하고 있다.”(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 경제를 둘러싼 주요 현안들이 모두 ‘저성장’ 시대를 예고한다.”(삼성경제연구소)학계와 재계, 중견·중소기업인들까지 한목소리로 다시 ‘성장’을 말하고 나섰다. 국내외 경제가 확실한 장기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데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이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에 빠져 경제민주화 공약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점을 우려해서다.

전경련은 25일 ‘한국 경제의 사막화가 우려되는 7가지 징후’ 보고서를 내고 여러 통계자료에 비춰 볼 때 한국은 이웃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①잠재성장률은 떨어지고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가진 모든 생산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때 달성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5월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2~2017년 3.4%→2018~2030년 2.4%→2031~2050년 1.0%로 급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하락 속도는 OECD 34개국 중 가장 빠르다. 2031~2050년 1.0%는 미국(2.1%), 영국(2.2%)의 절반에 불과하며 그리스(1.1%)보다 낮다.

②내수는 어렵고

민간소비는 추세적으로 둔화되고 있다. 취업난으로 가계의 소득창출 능력이 줄었고, 벌어들인 돈도 이자를 갚기에 급급해서다. 지난해 신규취업자 수는 41만5000명으로 7년 만에 최고였지만 2000년(86만5000명)과 비교하면 절반에 그친다. 시중 금리는 2000년 연 9.9%에서 2011년 5.5%로 4.4%포인트 내렸지만 가계의 이자지급액은 2000년 26조6000억원에서 2011년 44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가계부채가 늘어난 탓이다.③돈은 돌지 않는다

전경련 보고서는 돈의 흐름이 둔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얘기다. ‘한 단위의 화폐가 사용된 횟수’를 나타내는 통화유통속도는 1990년대 1.18에서 2000~2007년 0.86으로 줄더니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2011년 0.72로 떨어졌다. 돈이 돌지 않으면 유동성이 많지 않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생산 활동이 어려워진다.

④인구는 늙어가고지난해 취업자의 평균 연령은 43.8세였다. 10년 전에 비해 3.1세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조만간 베이비붐 세대(1955~1964년생)의 퇴직이 시작되면 노동력 공백과 피부양자 급증에 따른 연금 파탄 등이 우려된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⑤기업은 커지지 않고

선진국에 비해 소기업 비중은 높고, 대·중견기업은 적은 게 한국 기업 생태계의 특징이다. 경제 규모가 94%(명목GDP 기준) 늘어난 1999~2009년 10년간 대기업(종업원 1000명 이상)은 157개→111개로 29.3% 감소했고 중견기업은 5.2%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19.9%나 늘었다. 전경련은 “기업 규모에 따른 차별화된 규제정책 탓에 기업들이 어느 정도 커지면 안주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⑥나라 빚은 늘어가고

국가채무는 2011년 420조7000억원으로 2000년(111조2000억원)의 4배가 됐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도 18.4%에서 34.0%로 높아졌다. 2000년 이후 국가채무 연평균 증가율은 12.9%로 명목 GDP 증가율 5.7%를 웃돈다. 이 같은 증가 속도는 OECD 34개국 중 다섯 번째로 빠르다. 저성장, 고령화로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 가운데 쏟아지는 정치권의 복지공약은 나라 빚이 앞으로 더 증가할 것임을 예고한다.

⑦반기업정서로 기업활동 위축일자리의 원천이며 성장동력인 기업에 대해 국민의 부정적 인식은 높아지고 있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기업호감도는 2010년 54.0%에서 2012년 50.9%로 떨어졌고,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36.7%에서 46.7%로 급증했다. 보고서는 반기업정서 확산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저성장 구조를 고착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