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독일경제 살려낸 노동개혁, 한국도 시급하다

유로존 위기 속에서도 독일 경제가 강한 내성을 보이고 있다. 2009년 성장률이 -5.1%로 추락했지만 이후 3%대로 살아났고 수출은 두 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가며 작년엔 사상 최대인 1조4000억달러에 달했다. 유로존이 11.4%(8월)를 기록한 실업률도 독일은 절반인 5.6%에 불과하다. 비록 글로벌 경기침체로 올 성장률이 1%로 둔화되고 있지만 유럽의 모범생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힘은 강한 ‘중간기업(Mittelstand)’의 경쟁력과 고용 유연성에 있다는 게 포스코경영연구소의 분석이다.

독일의 중간기업은 종업원 500인 이하, 매출 5000만유로 이하, 대기업 지분율 25% 이하인 중견·중소기업이다. 전통 제조업 분야의 연구·개발(R&D) 비중이 높고 전문기술을 갖춘 세계화된 기업들이다. 독일 전체 수출의 22%를 담당한다. 독일의 히든챔피언(세계 3위 이내) 기업이 1500개인데 이 중 1350개가 중간기업일 정도다. 95%가 가족기업 형태여서 과도한 위험투자를 지양하고 단기 이윤보다 장기 성장을 추구한다는 것도 강점이다. 고교생의 60%가 직업훈련을 받고 졸업 후 취업해 필요한 인력이 꾸준히 공급되는 선순환 구조다.독일 제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유연한 고용이다. 90년대만 해도 주당 35시간 근로로 경쟁력이 약화됐던 독일이었지만 2003년 좌파인 슈뢰더 총리가 시작해 우파인 메르켈 총리가 완성한 하르츠 개혁으로 환골탈태했다. 채용이 쉽게끔 파견근로, 계약직, 해고 등의 규제를 줄였고 경기침체 때 근로시간을 줄여 해고를 최소화한 기업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인센티브를 실시하기도 했다. 실업급여 지급기간을 32개월에서 12~13개월로 축소하고 다른 복지급여와 중복해서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일하게끔 만든 것이다. 인기없는 정책으로 슈뢰더는 정권을 잃었지만 저성장·고실업·고복지라는 독일병(病)도 함께 사라졌다.

이는 저성장 쇼크에 직면한 한국에 더할 나위 없는 교훈이다. 수출로 먹고 살면서 제조업을 천시하고,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이며, 시도 때도 없이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게 한국이다. 하르츠 개혁을 국내에 도입한다면 노동계가 아우성 치고, 대학진학 대신 직업교육을 받으라면 학부모들이 난리칠 것이다. 퍼주기 경쟁을 벌이는 대선주자들에게 슈뢰더식 개혁은 불가능하다. 독일엔 있고 한국엔 없는 것이 국민에게 땀과 노력을 요구하는 지도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