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가계부채 해소에 부정적…성장 잠재력 확보가 가장 중요"

권혁세 금감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사진)이 경제민주화가 성장동력을 훼손해 결과적으로 가계부채 해소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피력했다. 또 기업의 잘못된 투자를 잘 감시할 수 있도록 주채권은행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권 원장은 전남 광주와 목포에서 ‘서민금융 대(大) 행사’와 ‘대불공단 중소기업 간담회’를 마친 뒤 지난 26일 상경길에 기자와 만나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가계부채 문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그는 “다가올 저성장, 고령화 시대를 고려할 때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특단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며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더라도 대기업의 투자나 성장동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 증가율 총량 관리와 질적 구조 개선만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1.6%로 2009년 3분기(1.0%) 이후 최저로 추락한 상황에서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경제민주화 정책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권 원장은 성장률을 높여 가계부채를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1차적으로 저신용 다중채무자와 같은 취약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세일 앤드 리스백’(신탁 후 임대)을 은행권 공동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컨틴전시플랜(비상대책)으로 검토 중” 이라고 덧붙였다.

신속한 기업 구조조정과 법정관리 신청 증가에 따른 하청·협력업체 및 투자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주채권은행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웅진그룹의 경우 잘못된 투자를 계속 했음에도 주채권은행의 견제 장치는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권 원장은 “지금 주채권은행은 직접적인 대출이 없을 경우 크게 관여하지 않지만 전체 채권단의 역할을 대신해 기업의 무분별한 경영 행위를 견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최근 은행 차입을 줄이고 회사채 발행 등 시장성 수신을 늘리는 데 따른 감시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장성 수신을 늘리면 부채는 증가해도 은행 차입금은 줄어들어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또 소비자 보호를 위한 별도 기구를 만들어 금감원을 두 개로 분리하는 데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치권 등에서 추진 중인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 분리 법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그는 “경제위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조직을 크게 흔드는 것은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