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는 SPC 정권" 비유도…두차례 경제위기 탓 후한 평가 못받아

秘史 MB노믹스 (18ㆍ끝) 취재기자 방담

'MB노믹스' 평가
▷차=‘MB노믹스’ 비사(秘史) 취재는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실용정부’를 표방한 MB정부가 확고한 철학이 없었다고 비판합니다. 정권 구성원들 자체가 같은 철학이나 신념에 동조한 ‘확신범’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오랜 세월 정치적 운명을 함께한 동지 관계도 아니었고요. 그러다 보니 MB정부는 정권 쟁취를 위한 일종의 ‘특수목적회사(SPC)’였다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권 쟁취를 위해 뭉쳤다가 정권을 잡고 난 뒤 주주들이 배당을 받아가듯 논공행상을 했다는 것이죠. 인사 낙맥상과 일관성 없는 정책 기조도 거기에 뿌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서=실제 초기 MB정부의 정책 핵심 라인은 강만수를 중심으로 한 관료파, 류우익 곽승준 등의 학자파, 박형준 정두언 등의 국회파로 나뉘어져 있었죠. 이건 여러 사람에게 힘을 나눠줘 경쟁시키는 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런 라인업은 견제와 균형을 이뤘을 수는 있지만 불협화음이란 부작용을 낳았죠.▷류=관료그룹과 학자 출신들 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같은 관료그룹 내에서도 반목이 있었습니다. 과거 재무부 출신과 경제기획원 출신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죠. MB정부에선 물론 강만수·윤증현 전 재정부 장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윤진식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재무부 출신들이 득세했습니다. 기획원 출신은 박병원 전 경제수석과 김대기 정책실장 정도가 등용됐을 뿐이죠. 장기적인 안목의 정책보다는 당장 성과가 나오는 수출 확대 정책이 강조됐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이=‘MB노믹스’가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건 미증유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임기 중 두 번이나 겪었던 탓도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년 글로벌 재정위기가 그것이죠. 때문에 친기업적인 성장 위주 정책이 제대로 성과를 내기도 전에 위기 대응에 급급하다가 결국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면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