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감청 위험 원천차단…100배 정확한 시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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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받은 '양자물리 기술' 생활 속으로
공공기관의 철벽 보안망을 수초 만에 해킹할 수 있는 컴퓨터, 도청·감청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보안기술, 현존하는 것보다 100배 정확한 시계까지….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양자 물리 현상을 이용해 구현하게 될 기술들이다. 데이비드 와인랜드 미국 표준기술연구소(NIST) 박사와 세르주 아로슈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는 이온과 빛 입자(광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수십 나노미터(㎚) 미시 세계의 양자들을 측정하고 제어하는 방법을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들의 연구 성과를 실생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술은 양자정보통신이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인간 유전자 분석 지도를 수시간 내에 그릴 수 있는 양자컴퓨터가 개발 중이고 양자암호 기술은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1000만달러 양자컴퓨터 등장
양자는 물리 현상을 측정하는 최소 단위다. 원자, 전자 등은 물론 빛(광자)까지도 최소 단위 에너지로 나눠 구분한다. 양자는 고전역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중첩, 복제 불가능, 얽힘 상태 유지, 원격 전송 등 고유한 성질을 가진다. 이런 특징을 활용해 개발 중인 대표적인 기술이 양자컴퓨터다.
현재 컴퓨터는 전기가 흐르지 않을 때 ‘0’, 흐를 때 ‘1’로 값을 구분해 작동한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서로 다른 양자가 만날 때 일어난 양자의 변화를 수직, 수평 방향 위치값으로 측정해 사용한다. 단순히 0, 1을 구분하는 기존 컴퓨터의 정보처리 단위(비트·bit)에 비해 양자의 처리 단위인 ‘큐비트(qubit)’는 0, 1 사이의 수많은 위치값을 표현할 수 있어 한 번에 많은 계산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컴퓨터의 10비트는 2의 10승, 즉 1024번의 연산을 순차적으로 수행하지만 양자 프로세서의 10큐비트는 1024번의 연산을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다. 양자공학 권위자인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우리석좌교수는 “현재 64비트 컴퓨터와 같은 개념의 64큐비트 양자컴퓨터가 개발되면 기존에 1만년 걸릴 연산을 수초 내에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캐나다의 디웨이브시스템사는 지난해 5월 128큐비트 성능을 가진 양자컴퓨터를 개발, 미국 록히드마틴사에 공급했다고 발표해 주목받았다. 이 컴퓨터의 가격은 무려 1000만달러(약 110억원). 과학자들은 보다 일반화한 양자컴퓨터가 나오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상용화 앞둔 양자암호
양자컴퓨터와 달리 1큐비트의 모듈만 있어도 구현 가능한 양자암호는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기존 통신 암호는 복잡한 인수분해 공식을 만들어 쉽게 풀지 못하게 하는 원리다. 하지만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빨라지면서 언제든 암호가 풀릴 수 있는 위협에 직면했다. 양자암호는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양자 블랙박스에서 나온 암호키(난수표)를 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보안을 인증한다. 누군가 도청하는 순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양자정보통신과 관련, 국내에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나노양자정보연구센터,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나노양자연구단 등이 기초기술을, SK텔레콤이 양자암호통신 등에 대해 개발하고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 투자가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양자컴퓨터
Quantum computer. 0과 1 두 가지만을 연산 신호로 사용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0과 1의 두 신호 특성을 모두 가진 양자 중첩 신호(00, 01, 10, 11)를 이용해 짧은 시간에 대용량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차세대 컴퓨터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