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연 '경제민주화와 기업가 정신' 심포지엄] "기업과 경제는 민주화의 대상 아니다"

기업가 정신만이 한국 경제 살릴 것
정부 역할, 공정경쟁 보장으로 전환해야

“기업가정신이 확산되지 않으면 저성장은 고착될 것이다.”(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 원장)”

“경제민주화로 기업가정신이 위축될 것을 우려한다. 정부는 자신의 역할을 경제 자유 및 공정 경쟁 보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12일 열린 한국경제연구원 주최 ‘경제민주화와 기업가정신 심포지엄’에서 학계와 재계·언론계 전문가들은 “기업가정신을 활성화하는 것만이 고령화·저성장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답”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병일 한경연 원장은 “장기불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치권의 공약은 경제민주화에 집중되고 있다”며 “경제민주화 프레임을 넘어 미래지향적인 기업정책의 방향을 찾았으면 한다”고 심포지엄 개최 취지를 설명했다.

◆기업가정신만이 성장을 이끈다한국 경제는 지난 3분기 1.6%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김동선 중소기업연구원장은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창업을 통해 성장 모멘텀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지만 청년창업률은 선진국에 비해 저조하고, 기술 창업도 정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30세 미만 청년 창업 비중은 2009년 전체 창업인구의 11%에 달했지만 한국은 4%에 불과했다. 또 한국에서 가장 많은 창업 유형은 생계형(41%) 창업이었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한국의 기업생태계가 늙어가고 있고, 젊은이들은 창업보다 공무원이 되길 원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중소 제조업체는 2006년 33만4000개에서 2009년 31만8000개로 줄었다. 그는 “한국 경제가 위기를 벗어나려면 변화 의지를 가진 기업가들의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기업가정신을 고취하려면 기업가의 성과를 존중하고 이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줘야 하지만 한국에선 이를 평가절하는 인식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농공상의 유교적 전통’ ‘상대적으로 높은 평등의식’ ‘정치권의 대중 인기영합주의’ 등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유 원장은 “기업가정신을 발현시키려면 기업이 사회성·윤리성을 바탕으로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숙하는 수밖에 없다”며 “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교육, 기업과 사회 간 협력적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이승훈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한국 경제는 이제 정부 주도적 성장을 마치고 창의와 혁신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정부는 자신의 역할을 국가 경제 선도에서 경제적 자유와 공정경쟁 보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기업가정신을 파괴

좌승희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경제력 집중과 부의 집적은 자본주의 발전의 정상적 과정”이라며 “정부는 시장의 차별화 기능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이를 더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이나 경제는 민주화 대상이 아니다”며 “한국 경제의 저성장 원인은 이 같은 평등주의적 정책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은 “경제는 자유로운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성장하는데, 발의된 경제민주화법제는 기업가 활동의 대부분을 범죄처럼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 지주회사 규제, 순환출자 규제, 업무상 배임횡령 가중처벌, 사외이사 비중 확대 등 지난 6일까지 제출되거나 제안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률은 40여건에 달한다. 정 실장은 “기업 내부 의사결정과 외부 계약관계에 대해 사회적 감시와 통제를 가할 경우 기업가정신을 죽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세련 경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배임·횡령죄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복잡한 경영환경 속에서 비슷한 사안에 대해 어떤 사안은 집행유예가 되거나 기각되고, 또 김승연 한화 회장처럼 법정구속이 되는 등 경영판단에 대한 법률적 잣대가 불분명하다”며 “경영판단의 결과에 따른 손해는 주주 등 이해관계자가 민사사건으로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부당하게 큰 돈 버는 사람 없는 사회 돼야"…'기업가 윤리' 도 강조

기업의 반성과 사회공헌을 강조하는 의견도 많았다. 소설가 복거일 씨는 “부당하게 큰돈을 버는 사람이 없도록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며 “부유한 사람들이 부당한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 그 체제는 더욱 안정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영욱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자본주의가 성공하고 대기업화될 때 반기업 정서가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기업가정신 못지않게 기업가 윤리도 강조돼야 하며 노동소득 분배율 개선, 복지제도 등을 통해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승훈 교수는 “재벌 개혁 문제는 경제적 약자에게 자기방어권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새로운 규제로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약자에게 자기방어권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징벌적 배상제와 집단소송제도를 제시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양극화와 청년실업 등은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기업과 사회가 함께 가지 않으면 기업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