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따라 쪼개고 붙이고…YS 이후 부처 개편만 20건

5년마다 정부조직 개편…이번에도 '대수술' 예고

피곤한 공무원들
업무 연속성 저해 우려…거론되는 부처들 '술렁'

'정치적 개편' 폐해
이익집단 요구에 휘둘려…조직 정착만 2년 걸려

“어차피 12월20일부터 아닌가요. 지금 우리가 떠들어봤자 의미없는 일이고, 차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알아서 하겠죠.”

주요 대선 후보들이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공약에 대해 한 경제부처의 고위 관계자는 이처럼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5년마다 되풀이되는 ‘떼고 붙이는’ 식의 개편에 넌덜머리가 난다는 표정이었다.물론 정부가 지향하는 목표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와 공약사항이 다른 만큼 조직도 그에 맞춰 유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새 대통령이 자신의 철학과 공약을 구현하기 위해 개편에 나서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지경부-국토부 엇갈리는 표정

하지만 역대 정권이 저마다 혁신논리를 앞세우며 큰 폭으로 정부조직을 흔들면서 관료들의 피로감 또한 큰 것이 현실이다. 새 조직이 안착하기까지는 대개 1년 이상 걸리는 만큼 조직과 업무의 안정성도 저해되기 십상이라는 지적이다.요즘 정부조직 개편 공약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부처는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과거 정보통신부와 해양수산부 조직을 복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지경부는 옛 정통부의 정보기술(IT) 산업정책 부문을 흡수했고, 국토부는 해수부의 조직 대부분을 흡수해 탄생한 부처다.

특히 과거 정부 출범 때마다 ‘상공부→상공자원부→통상산업부→산업자원부’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조직 개편의 중심에 서 있었던 지경부는 정통부 복원으로 산업 정책의 중요한 한 축인 IT 분야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IT와 기존 산업의 융복합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IT 산업정책 기능을 떼어낼 필요가 있는지 국가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반면 해수부 부활에 대한 국토부 반응은 엇갈린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 건설교통부 출신 직원들은 업무 시너지를 강조하며 부처 분리를 반대하지만 옛 해수부 출신들은 해양자원 개발 및 해양주권 강화를 위해 해수부 부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재경부에서 떨어져 나와 금융위원회로 이동한 공무원들은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될 경우 금융정책부서 공무원들은 기획재정부로의 통합 대상에 오르는 동시에 세종시로 이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위적 개편 자제해야중앙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5년마다 반복되는 정부 조직개편의 효용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한 중앙부처 1급 인사는 “부처 개편으로 조직을 세팅하는 데 1년, 새 정책을 짜고 업무에 적응하는 데 1년 등 새로운 조직이 본격적인 정책을 펴는 데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며 “대통령 5년 단임제 시스템에서 너무 잦은 조직개편은 오히려 국가적인 손실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인위적인 조직개편보다는 부처 간 공동목표 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장용석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세운 큰 목표를 중심으로 각 부처들이 공동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영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부처 조직개편은 중소업계, 해양업계 등의 집단적 요구를 들어주는 창구로 오남용될 때가 많다”며 “부처 안의 국(局) 또는 실(室) 차원의 변화로 부처 단위의 개편을 대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정호/류시훈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