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구개발특구를 '혁신요람' 으로

선진국 R&D '개방형혁신' 지향
긴밀한 네트워크로 벽 허물고 일터·삶 아우르는 환경 갖춰야

이재구 <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
과학기술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이 있다. NIH(Not Invented Here·자신감이 지나쳐 외부의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배타적 성향) 신드롬으로 대변되는 폐쇄형 연구·개발(R&D)에서 ‘개방형 혁신’으로, 선진국의 모방·추격형에서 창조형으로 과학기술 분야가 적극적 아이디어 및 미래기술 트렌드를 제시하며 콘텐츠 등의 개발에 힘쓰고 있다.

요즘 ‘창조 경제’나 ‘혁신경제’가 많이 논의되고 있는데 키워드 중 하나가 개방형 혁신으로 이를 실현해가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장(場)이 혁신 클러스터라 할 수 있다. 혁신클러스터는 기술과 산업, 지역 정책을 통합한 것으로 산·학·연 구성원 간 활발한 네트워크를 통해 지식이 창출되고 확산·활용되는 선순환 생태계가 형성되는 지역을 말한다. 혁신 클러스터 이론으로 유명한 MIT의 스콧 스턴은 최근 한국을 방문해 “앞으로 5~10년간 한국의 경제전략은 혁신 클러스터와 그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의 실리콘밸리, 스웨덴 시스타, 핀란드 울루 등이다. 한국에는 2005년 연구개발특구로 지정해 세계적 혁신클러스터로 육성하고 있는 대덕연구단지가 대표적이다. 2011년에는 광주와 대구, 그리고 최근에는 부산이 추가로 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된 바 있다.

2013년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기반이자 구심점 역할을 해온 대덕연구단지가 40년을 맞는 해다. 지난 40년의 성과를 재조명하고 미래 한국의 성장동력을 이끌어갈 과학기술의 비전과 목표를 설계해야 할 중대한 시점이다. 우선 기초과학 연구에서 응용·개발연구, 그리고 사업화까지 과학기술 융복합의 가치사슬이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벤처 및 산업 생태계가 스스로 작동하는 혁신 클러스터 육성 전략을 다듬어야 한다.

특히 대덕특구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거점지구로 지정돼 있어 앞으로 중이온가속기와 기초과학연구단이 들어서게 되며, 4~5년 뒤에는 기초과학 분야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기존 KAIST 등 대학의 연구역량, 30개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R&D 역량이 과학벨트의 기초과학 역량과 연계돼 혁신 클러스터 허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더불어 혁신 클러스터가 활성화되려면 개방형 혁신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 개방형 혁신은 외부와의 교류·협력으로 공동 가치를 창출하는 것에 목표를 둔다. 산·학·연 네트워크를 통한 시너지 확보가 혁신클러스터의 바람직한 모습이라면 개방형 혁신은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 된다. 아직 우리 과학기술계에는 대학, 정부 출연연, 기업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이 남아 있다. 때문에 산·학·연 구성원 간의 네트워킹이 보다 강조돼야 한다. 역동하는 선진국형 혁신클러스터 문화가 정착되는 곳. 바로 과학기술 혁신의 인터페이스가 연구개발특구에서 지향하는 미래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연구개발특구를 ‘스마트 파워(smart power)’ 시대에 걸맞은 세계적 수준의 환경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 하버드대의 조지프 나이 교수가 외교관계나 권력의 변화를 논의하면서 처음 사용한 스마트 파워라는 용어는 물리적으로 표현되는 ‘하드 파워’와 교육, 문화, 예술 등 문화적 영향력이 중시되는 ‘소프트 파워’의 결합을 의미하지만 이는 과학기술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R&D기관과 기업의 집적이라는 연계뿐 아니라 녹지와 교육, 의료시설, 주거시설 등 일터와 삶터가 조화를 이루는 곳, 창의와 자율이 존중되고 실패가 용인되는 문화 속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창출될 수 있는 것이다.

연구개발특구가 개방형 혁신의 물결이 용솟음치는 혁신클러스터로서 최적의 인터페이스로 작동하려면 기초과학에서 사업화까지의 가치사슬 연계, 선순환하는 벤처 및 산업 생태계 조성과 네트워킹, 스마트 파워 시대에 걸맞게 문화적 역량이 조화된 환경을 어떻게 이뤄갈지 체계적 접근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재구 <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