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으로 광합성…신약원료 물질 만든다

화학硏 백진욱 연구원팀

엽록체 기능에 해당하는 태양광 시스템 개발
합성 작용 돕는 효소 투입…정밀 화학제품 생산 길 열려

‘식물이 광합성을 하듯 빛과 물, 이산화탄소만으로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태양광 공장을 만들 수 있다면?’

국내 연구진이 인공광합성을 이용해 이 같은 미래 희망을 구현하는 데 단초가 될 기술을 개발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백진욱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사진) 연구팀. 이들은 태양의 빛에너지를 이용해 신약 원료물질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식물이 물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생존에 필요한 포도당을 만드는 것처럼 인공광합성 장치를 이용해 에너지원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최근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가 활발해지는 등 식물을 모방해 새로운 에너지원을 만드는 인공광합성이 미래 녹색 기술로 관심을 끌고 있다.○광합성, 식물만 하는 게 아니다

식물은 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있지만 지구상에서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식물 안의 엽록체는 태양광을 받으면 전자를 방출하고(명반응) 여기서 생성한 에너지(보조효소)를 이용해 포도당 등 성장에 필요한 화합물을 합성(암반응)하면서 생명을 이어간다.

인공광합성은 이런 식물의 기능을 모방한 기술이다. 기존 태양전지가 광합성의 명반응을 이용해 전기만 생산하는 방식인 반면 백 박사 연구팀이 이번에 개발한 시스템은 명반응, 암반응을 모두 구현해 에너지원이 될 물질까지 합성해냈다.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을 생산하는 반면 이 시스템에서는 항우울제, 항히스타민제, 부정맥치료제 등을 만들 수 있는 중간물질(키랄 알코올)을 만든 게 차이점이다.연구팀은 이를 위해 식물의 엽록체 기능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빛을 받아 전자를 이동하게 만드는 광에너지 전환부, 이를 전달하는 전자전달시스템, 그리고 산화 환원 효소의 도움을 받아 정밀화학 제품을 만드는 바이오촉매(효소) 반응부 등 세 가지 구성부를 하나로 연결한 일체형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화학분야 국제 학술지 ‘안게반테 케미’ 최근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이에 앞서 7월에는 같은 원리로 태양광을 이용해 바이오 연료 중간물질(포름산)을 생산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백 연구원은 “화학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면 인체에 유해한 물질과 의약품에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물질이 동시에 생성되지만 이번에 개발한 시스템은 특정 효소를 이용해 유용한 물질만 만들 수 있다”며 “식물처럼 태양광, 물, 이산화탄소 이외의 별다른 에너지를 추가 투입할 필요가 없고 물질 합성을 돕는 효소만 바꿔주면 다양한 정밀화학 제품을 선택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태양광으로 의식주 모두 해결인공광합성 연구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2010년부터 5년간 1억달러 이상을 칼텍, UC버클리,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우수연구자로 구성된 인공광합성 연구센터에 지원하고 있다. 일본 파나소닉은 2015년까지 인공광합성을 이용해 식물의 광합성 효율과 비슷한 수준까지 생산 효율을 높인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서도 지난해 4월 박찬범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바이오 촉매를 이용한 인공광합성 시스템을 첫 개발하기도 했다.

이들 기술은 소규모 화합물을 생산하는 실험실 단계 수준으로 실제 산업에 적용하기까지는 10여년 이상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광반응의 효율성 향상, 합성에 사용하는 효소의 안정성 확보, 대량 생산공정 개발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백 박사는 “태양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1년간 사용해도 남을 만큼의 에너지를 시간마다 지구 표면에 쏟아 붓고 있다”며 “미래에는 태양광을 이용해 전기뿐만 아니라 의식주에 필요한 물질까지 생산하는 새로운 개념의 태양광 공장이 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 인공광합성

식물이 빛을 이용해 포도당을 만들어내듯 빛, 물, 이산화탄소 등을 이용해 에너지원이 될 물질을 합성해 내는 기술. 기존 태양전지 기술에다 효소로 물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결합해 개발했다. 이를 통해 천연 아미노산, 신약 원료물질, 바이오연료 등을 태양광 공장에서 직접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