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카지노와 채권단의 닮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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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한국 금융회사들은 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 신용조사를 제대로 안하는 게 문제입니다.”
오수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4일 전화통화에서 웅진홀딩스 등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사태와 관련해 이같이 지적했다. 오 교수는 국내 법조계에서 도산법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유엔 소속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의장도 맡고 있다.그는 “1997년 한보사태 당시 금융회사들이 부실 기업인 한보에 돈을 들고 가다시피해서 대출해 준 것으로 드러났는데, 여전히 개선된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이어 “미국 등에서는 이른바 ‘lender liability’(대출자 책임)를 통해 채권자에게 강한 책임을 지운다”고 설명했다. ‘대출자 책임’은 금융회사가 돈을 빌려줄 때 채무자에게 대출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거나, 채무자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해 이익을 챙길 경우 금융회사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형 법무법인의 도산 분야 전문 변호사는 강원랜드의 사례를 들었다. 강원랜드가 거액을 잃은 도박 중독자에 대해 출입제한을 풀어 다시 도박을 하게 했다가 그 가족들로부터 소송을 당한 사건이었다. 그는 “법원은 강원랜드가 ‘고객이 거액을 잃도록 방치했다’는 이유로 도박에서 잃은 돈의 60%를 돌려주라고 판결했다”며 “채권단이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의 무리한 사업에 각종 연대보증 등 안전장치를 두고 돈을 계속 빌려주는 것도 비슷한 경우 아니냐”고 주장했다.
금융회사들은 인천 구월동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에서 시공사인 극동건설에 대해 시행사의 채무를 연대보증하도록 하고, 극동건설의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에 대해서는 자금보충 약정까지 맺도록 했다. 자금보충 약정은 자회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지주회사가 자금을 지원해 대출금을 갚도록 하겠다는 약정이다. 현행법상 상호보증 제한 등의 규제를 받지 않아 ‘채무보증 위장책’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물론 기업 부실의 책임은 기업에 있다. 하지만 위험 가능성을 알면서도 몇 가지 안전장치를 만들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나중에 모든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는 금융회사를 도박 중독자의 출입제한을 해제한 카지노 회사와 비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