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름다운 동행

배우 위하는 연출, 연출 위하는 연기
'사이토·스즈키' 일본 연극계의 영웅들

구자흥 < 명동예술극장장 koo.jahung@gmail.com >
도가는 인구 1000명도 안 되는 일본 도야마현의 아주 작은 산골마을이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1966년 연출가 스즈키 다다시, 극작가 베쓰야쿠 미노루, 사이토 이쿠코가 함께 창단한 와세다소극장이 근거지를 이곳으로 옮기고 난 1976년 이후부터다. 눈 피해를 막기 위해 지붕을 두 손을 모은 합장 형태로 지은 도가산방에서 1981년 열린 일본 최초의 국제연극제 도가페스티벌이 이곳을 바깥 세계에 알린 첫 신호였다.

2001년 서울시극단의 ‘길 떠나는 가족’, 2004년 극단 풍경의 ‘하녀들’이 공연된 곳도 도가산방이다. 해마다 여름에 벌어지는 축제 마지막 날 그리스풍의 야외극장 700석을 꽉 메우는 관객 열기도 놀랍거니와 연극이 끝난 후 벌어지는 불꽃놀이는 장관이다. 마지막으로 그날 주빈들이 무대에서 커다란 나무술통 뚜껑을 부수고 관객 모두가 청주를 한 잔씩 나누는 것으로 축제는 막을 내린다. 얼마 전 도가에서 지난달 초 세상을 떠난, 오로지 연극을 위해 일생을 바친 프로듀서 사이토를 그리워하는 모임이 열렸다. 그는 와세다소극장이 1984년 도가스즈키극단(Suzuki Company of Toga)으로 명칭을 바꾸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한 연출가 스즈키의 작업을 세계 관객에게 알리는 데 혼신의 열정을 바친 특별한 인물이다.

스즈키가 누구인가? 스즈키메소드라는 연기 훈련으로 명성을 얻은 20세기 일본 연극을 대표하는 연출가임에 분명하지만 불 같은 성격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공연 참가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배우에서 제작자로 변신한 이후 사이토는 밖으로는 탁월한 제작자로서, 안으로는 조직 결속을 다지는 유능한 조정자 역할을 마지막까지 치밀하게 수행했다.

내가 사이토를 처음 만난 게 베세토연극제 창설 무렵이니 어느덧 20년이 가까워 온다. 그는 내가 의정부음악극축제를 창설하면서 러시아 타간카극단의 ‘마라 사드’를 초청할 때 유리한 조건으로 공연이 가능하도록 결정적 도움을 주었고, 한·일 합작공연 ‘엘렉트라’를 서울과 안산에서 공연할 때도 큰 배려를 베풀어준 인연이 있다. 그러나 내가 그를 존경하는 진짜 이유는 오직 한 예술가를 향한 진정한 헌신으로 일본 연극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한 아름다운 삶의 모습 때문이다. 사이토 특유의 따뜻한 미소와 예리한 통찰력이 스즈키가 러시아 한국 중국 대만은 물론 미국 독일 그리스 등과 원활한 교류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사이토는 스즈키에게 더 없는 축복이고 선물이었다. 사이토는 스즈키의 예술을 더 빛나게 하고, 스즈키는 사이토 일생의 의미를 완성시켜준 좋은 파트너였다. 그래서 스즈키와 사이토의 아름다운 동행은 일본 연극계로서도 행운이다.

구자흥 < 명동예술극장장 koo.jahu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