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개정안 연내 통과 무산될듯…투자은행 준비한 증권사들 '허탈'

"힘들게 증자했는데…"
장외거래 청산소도 지연
IB 조항 빼고 처리 할 수도
정부가 대형 투자은행(IB)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 개정안’의 연내 국회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대형 IB 육성 여부는 차기 정부의 몫으로 넘어가게 된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4일 자본시장법 개정을 위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기로 했으나 여야의 입장차로 회의를 15일로 연기했다. 소위는 전날에도 오후 6시까지 회의를 열었으나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정무위 관계자는 “야당 의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해외 대형 IB들이 무분별하게 파생상품을 판매해 발생했는데 우리나라까지 IB를 만들면 또다른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IB를 도입해도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고 관련 규제도 많이 있어 부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며 야당 의원들을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위는 여야 의원 4명씩(총 8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표결로 갈 경우 과반(5명 이상)이 찬성해야 법안이 통과된다.

또 다른 정무위 관계자는 “15일에 금융위, 민주통합당이 각각 추천하는 전문가들을 불러 공청회를 열기로 했지만 이번 정기국회 본회의(23일) 전까지 법안 처리가 사실상 물건너간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막판 협상을 통해 야당이 반대하는 IB 관련 조항을 빼고 법안을 처리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증권업계는 실망하는 분위기다. 특히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대우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등 5개 대형 증권사는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 증권사는 올해 안에 법 개정안이 통과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지난해 말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규모를 3조원 이상으로 늘려놨다. 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자기자본 3조원이 넘는 증권사들을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하고, 이들 증권사에 한해 기업에 대한 신용공여, 비상장주식 내부주문집행 등의 업무를 허용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 측은 장외거래 중앙청산소(CCP) 도입이 늦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CCP란 장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에 제공되는 중앙청산결제 서비스를 이자율스와프 신용부도스와프 등 장외파생상품까지 확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CCP가 설립되면 장외파생상품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제불이행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임재준 한국거래소 신사업부장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장외거래 중앙청산소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는데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 안돼 설립이 지연되면 한국 자본시장의 대외 신인도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연초부터 논의하고 있는 중소형 증권사 활성화 방안도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김동윤/김은정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