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안성기 "꾸준한 작품활동 비결요?…유머와 절제 덕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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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과 맛있는 만남
유니세프 친선대사 등 공식직함만 20개 넘어…신영균재단 사업도 총괄
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까지 맡아…운동으로 체력 다져…골프 '싱글'
화재 다룬 재난영화 '타워'로 곧 팬들 다시 찾아갈 것
‘국민배우’ 안성기 씨(60)는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의 미식가는 아니다. 일 때문에 스태프와 자주 들르는 맛집이 있기는 하다. 최근 폐막한 제10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사무국에서 가까운 일식집 ‘단’. 신문로의 서울역사박물관 옆에 있는 이 식당이 영화제 집행위원장 겸 심사위원장인 그의 단골집이다.
“도시 한복판에 정원을 갖춘 이 식당에 오면 여유가 생겨요. 운치가 있고 음식 맛도 좋지요.”식당은 일본풍 적산가옥이다. 앞마당에 감나무 은행나무 외단풍 자작나무 대나무 등이 제법 빽빽하다. 숨가쁜 일정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으로 충분하다.
그는 올 들어 두 편의 영화 ‘부러진 화살’과 ‘페이스메이커’를 선보였다.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굿다운로더캠페인 공동위원장, 유니세프 친선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을 비롯해 10여개 영화제의 집행위원 일도 맡고 있다. 공식 직함만 20개가 넘는다.
우리 주변 소시민의 애환을 대변하며 55년 영화 인생을 살아온 그와 점심을 즐기면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0년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한 소감을 물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경쟁 단편영화제입니다. 10년을 버틴 것은 인정해줘야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간다는 약속이기도 하지요. 국내 단편영화의 좌표 역할을 하면서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제는 자리가 잡힌 느낌이에요.”
전채 요리로 샐러드가 들어왔다. 두부와 토마토, 양상추 등에 향긋한 일본 소스를 얹은 드레싱이 입안에 청량감을 준다. 그는 이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심사위원장을 겸한 사연을 들려줬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위원장의 데뷔 단편영화 ‘심사위원(JURY)’에 등장한 5명의 출연진이 그대로 심사위원까지 맡는 이벤트라는 것이다. 극 중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배우 강수연은 다른 심사위원이 왕년의 톱스타였던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에 발끈해 멱살잡이 소동을 일으켜 웃음을 자아냈다. 안씨는 정반대 의견을 내고서는 싸우는 심사위원들에게 애매한 표정으로 “다 옳다”고 해 또 한번 웃음을 준다.
“심사위원은 가급적 안 하려고 해요. 심사위원장을 해보니까 수상하지 못한 분들이 섭섭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바쁘기도 하고요.” 생선회가 상에 올라왔다. 도미, 광어, 농어, 방어에다 성게알, 전복, 참치 뱃살까지 푸짐하다. 쫄깃한 게 식감이 좋다. 참치 뱃살도 입안에서 녹았다. 생선회 맛을 음미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색, 계’의 여주인공 탕웨이와 공동으로 MC를 맡았던 느낌을 물었다. 국내 영화제에 외국 배우가 사회자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탕웨이와의 진행은 동시통역돼 자연스러웠다고 했다.
“배우들이니까 대사를 주고받는 느낌을 금세 알아챈거죠. 각종 영화 행사에서 매년 두세 차례 사회를 봅니다. 그런데 MC는 저하고는 잘 안맞는 느낌입니다. 즐기지 못하고 부담스러워하니까요.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즐기는데….”
그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긴급 구호지역을 찾아 실상을 알리고 모금 활동도 벌인다. 지난 20년간 코트디부아르 빈민, 가나, 아이티 지진참사 현장 등 14개국을 다녀왔다. 1년6개월마다 해외 출장을 다녀온 꼴이다.“유니세프 활동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우리가 어릴 때 받은 유니세프의 도움을 갚는 게 인간적인 도리입니다. 이제 지구촌은 하루 생활권이에요.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도 우리 이웃입니다.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나 유니세프에는 10년, 20년씩 계속 참여했어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랫동안 가는 타입입니다.”
그는 광고에서도 최장수 출연 기록을 세웠다. 1983년부터 맥스웰과 맥심 등의 커피광고 모델에 나서 내년이면 30년을 맞는다. 그 다음으로 김혜자 씨가 26년간 ‘다시다’ 모델로 활동했다.
대화를 잠시 중단하고 따뜻한 요리를 먹었다. 병어구이와 생대구탕이다. 일본 된장을 살짝 발라 구운 병어가 고소하다. 제철 생선인 생대구는 살이 차 있고 담백하다.
지난해부터 열정을 쏟고 있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직에 대해 물었다. 그는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 씨가 기증한 재산으로 영화인 자녀 장학사업을 비롯해 시나리오와 단편영화 등에 지원하는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설립자의 뜻을 받들어 미래를 짊어질 후배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재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제 2년째라 미미하죠. 씨를 뿌리는 단계예요. 10~20년 후에는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조만간 명보극장의 한 관을 옛 영화나 예술영화를 보여주는 극장으로 다시 살려낼 계획입니다.”
그는 연기 외의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고 했다. 좀 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활동을 좀 더 한 뒤 여유를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고 했다. 그에게 이처럼 러브콜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맡은 일에 대해 책임감과 믿음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을) 맡기면 잘할 것이란 믿음 말이죠. 허술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하하. 덕분에 저는 슬럼프를 겪지 않고 현명하게 잘 넘겨온 것 같습니다.”
다섯 살 때 아역으로 데뷔한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영화에 단독 주연으로 나섰고, 2000년대 들어서는 주연과 조연을 병행했다. 요즘에도 연 평균 1.5편 정도 출연한다. 꾸준히 작품이 들어오는 데는 후배들과 관계 맺기를 잘하는 요인도 있다.
“무엇보다 편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적당한 유머와 절제가 조화를 이뤄야 하고요. 말이 너무 많아도, 적어도 안돼요. 나이가 들면 가만히 있어도 주위에서 힘들어 해요. 분위기도 이상해지고요. 후배들과 무조건 소통해야 합니다. 나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맞춰야 합니다.”
출연료를 스스로 낮춘 일화는 유명하다. 한두 번 그랬다가 불이익을 많이 당했다고 한다.
“저한테 사정하면 들어줄 것 같다는 거예요. 그게 저의 몫이고 매력이기도 하니까 하는 수 없지요.”
"인생살이도 영화도 영원한 상승곡선은 없어"
일식 초간장 소스를 얹은 안심 스테이크와 채소를 입에 넣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전해졌다. 뒤이어 나온 도미 머리 조림도 일품이다. 간장과 도미살 맛이 잘 어울렸다. 그는 “음식이 너무 많다”고 말하면서도 남기지 않았다. “많이 먹는 편이에요. 체중 관리를 위해 억지로 먹는 것을 줄이지는 않아요. 대신 운동을 많이 합니다. 1주일에 3~4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요. 나이에 비해 센 강도로 1시간씩 운동합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골프. 핸디캡 6,7정도의 아마 고수다.드라이브샷 거리도 220~230야드나 된다. 올해 개봉한 영화의 흥행 성적은 반반이다. 석궁 테러를 한 교수 역으로 나온 ‘부러진 화살’은 대성공했고, 조연으로 나선 ‘페이스메이커’는 실패했다.
“‘부러진 화살’이 그렇게 잘 될 줄 아무도 몰랐어요. 좋게 평가해줘 일을 해나가는 데 큰 용기를 얻었어요. 상이나 호평받는 것은 굉장히 좋은 선물입니다. 무관심하면 힘이 더 들죠.”
‘페이스메이커’에서는 마라토너로 나온 김명민을 돕기 위한 감독 역이었는데 캐릭터가 너무 단선적으로 그려진 게 화근이라고 자평했다. “시행착오죠. 결과를 알면 너무 쉬운데….”
올겨울에는 화재 재난 영화 ‘타워’에서 조연인 소방서장 역으로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1980년 ‘바람불어 좋은날’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약한 소시민 역으로 전성기를 보냈다.
“1980년대라는 시대가 만들어준 인물이죠.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인물은 다루기 어려운 시대여서 풍자적으로 어리석거나 약간 모자란 모습으로 그 시대를 얘기했지요. 순수하고 사람 좋은 느낌의 캐릭터가 저하고 많이 닮았어요. 2000년대 들어서는 세상이 많이 변해 다양한 역할을 맡았죠. ‘실미도’나 ‘부러진 화살’ 등에서는 냉정한 인물, ‘라디오스타’에서는 무능하지만 인간적인 매니저, ‘피아노치는 대통령’에서는 연애하는 대통령 역 등을 했죠.”
그는 한국영화가 전성기를 맞은 것에 감회가 크다고 했다. “1980년대 영화는 거칠면서 이야기하기에만 급급했어요. 다양성도 없었고요. 지금은 소재와 주제가 다양해졌고 만듦새도 세련됐어요. 하지만 항상 상승곡선을 타는 것은 없어요. 오르락내리락하는 거죠. 그러니 후배들도 길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눈앞에 닥친 일에 일일이 반응하면 너무 힘들어요. 충격이 왔을 때 완화시켜 받아들이고, 기쁘다고 너무 들뜨지 말아야겠지요. 가장 큰 절망은 일을 못한다는 거예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매진하면 좋겠어요.”
안성기의 단골집 단 2.5㎏ 넘는 생선으로 회 … 새우튀김도 바삭
서울 신문로에 있는 일식당 단은 2009년 9월 문을 열어 3년 남짓한 역사를 지녔다. 황정현 사장이 일본에서 10여년간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워커힐호텔 주방장을 고용해 정통 일식당을 차렸다.
이 식당은 회와 초밥 위주가 아니라 일본의 보통 요리집처럼 조림과 볶음을 많이 내놓는다. 또 2~3인이 함께 식사를 해도 회를 개별로 내놓는 게 특징이다. 일본의 식문화를 그대로 도입한 것이다.
황 사장은 2.5㎏ 이상 생선을 횟감으로 쓰기 때문에 육질이 좋다고 강조한다. 생선은 커야 맛있지만 클수록 원가가 비싸진다. 이 때문에 웬만한 일식집에서는 작은 크기의 생선을 내놓는다고. 새우튀김도 큰 것을 쓰기 때문에 머리가 특히 바삭바삭하다. 조림 요리에 사용하는 도미 머리는 별도로 구입한 게 아니다. 회를 발라내고 남은 것이기 때문에 하루에 2~3개만 나온다. 점심 코스는 3만~4만원이다. 저녁 코스는 5만원부터 8만원, 10만원, 12만원까지 있다. 3만원짜리 점심 세트 메뉴는 회, 초밥, 우동, 새우튀김, 조림, 생선구이, 닭고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12만원짜리는 회가 한 번 더 나온다. 참치 뱃살 등도 최고 품질이다. (02)720-8007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