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제윤 "올해가 끝이라 각오하고 '깡'으로 버텼죠"

ADT챔피언십 우승…KLPGA 대상 거머쥔 양제윤

막판 연속 버디로 대역전극…시즌 2승
3관왕 노리던 김하늘은 상금왕에 만족

한국여자프로골프 시즌 최종전인 ADT캡스챔피언십(총상금 4억원)에서 우승하며 대상(올해의 선수상)까지 거머쥔 양제윤(20·LIG손해보험)은 지난해 시드 확보를 걱정할 정도로 그저그런 선수였다. 7360만원을 벌어 상금랭킹 44위로 50위까지 주는 시드를 간신히 따낸 양제윤은 사실상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임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회 출전 경비를 대기도 부족했다. 이런 상황이 올해도 반복된다면 선수생활을 접고 레슨을 하든지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10세 때 우연히 TV로 골프중계를 보다가 박세리가 우승하는 것을 본 양제윤은 “너무나 예쁜 코스에서 서양인들의 환호를 받는 박세리 프로의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다. 무작정 엄마에게 달려가 ‘저거 시켜달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국가대표 상비군, 국가대표를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지난해 프로가 된 뒤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올 상반기에도 부진이 거듭되자 “이대로는 사라지지 말자고 되뇌이면서 ‘깡’으로 버텼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LPGA하나·외환챔피언십에서 자신의 ‘롤 모델’인 박세리와 동반라운드를 하는 영광을 잡았다. “정말 소풍나온 애처럼 박세리 프로님만 졸졸 따라다니며 배웠어요. 오랜 경험에서 오는 신중함, 여유로움을 배운 것 같아요. 저에게는 코스 매니지먼트에 신경을 많이 쓰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양제윤은 17일 싱가포르 라구나내셔널GC(파72)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2번홀(파5) 115야드 지점에서 샷이글을 낚기도 했지만 11번홀(파4)에서는 티샷한 볼이 벙커벽으로 세워진 나무 틈 사이에 끼어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역전의 기회는 14번홀에서 찾아왔다. 3타차 단독선두를 달리던 김자영(21·넵스)이 14번홀(파4)에서 보기를 범하는 사이 양제윤은 그린에지 9m 거리에서 퍼터로 버디를 집어넣어 1타차로 따라붙었다. 김자영이 15번홀(파5)에서 20㎝ ‘탭인 버디’로 달아나자 양제윤은 16번홀(파4)에서 1m 버디를 잡아냈다. 17번홀(파3)에서 김자영이 티샷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범하면서 승부가 갈렸다. 양제윤은 8월 넵스마스터피스에 이어 시즌 2승째를 거뒀다.

김하늘(24·비씨카드)은 합계 1오버파로 공동 20위에 그쳐 대상을 양제윤에게 내줬으나 양제윤이 김자영에게 막판 대역전에 성공하면서 상금왕을 차지했다. 김자영이 우승하면 상금왕도 내줄 상황이었다. 연속 상금왕 등극은 신지애(2006~2008년) 이후 김하늘이 처음이다. 평균타수(71.55타)도 1위에 올라 시즌 2관왕을 차지했다.

김하늘은 “하늘이 도운 것 같다. 이번 대회 들어 상금왕, 대상이 너무 신경쓰여 플레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짜증도 엄청나고 스트레스가 심해 골프를 치기 싫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아쉽게 끝나 오히려 나를 돌아보게 해준 것 같다. 올겨울 미 플로리다에서 부족한 쇼트게임과 퍼팅을 집중적으로 보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싱가포르=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