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학생들 보기 민망한 정치권 '무개념'

정의·공정 외치지만 실제론 달라
韓美 FTA·제주기지 일관성 없어
표 좇는 주장에 교육현장만 혼란

김정래 <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duke77@bnue.ac.kr >
포퓰리즘에 빠진 일반 대중, 유권자들의 소아(小我) 이기주의와 우매함만을 탓할 필요가 없다. 정치지도자들이 이를 조장하고 부추기기 때문에 원인 제공자는 그들이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즈음 세태를 보면 아이들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학생들에게 ‘지도자’나 ‘공정’의 개념을 가르칠 때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뽑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특히 이번 대선 유력 후보들의 언행과 공약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정치하는 사람은 모두 ‘공정’ ‘사회정의’를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그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왜 그런지 몇 가지만 살펴봐도 금세 드러난다. 그들의 주장에 가장 가까운 개념이 보편성에서 파생된 칸트의 ‘보편화 가능성’이다. 이 말은 적어도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공정과 사회정의의 전제인 보편화 가능성이 실행되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야권 주자들이 논의를 다시 하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추진한 사안이다. 시간상 일관성이 없다. 교육공약에서도 수월성(秀越性·excellence)을 보장한다, 학생들의 교육욕구를 충족시키도록 한다고 하면서 고교 평준화를 확대하고, 학교선택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논리적 일관성이 없다. 한 달 전 어느 후보는 헌법 가치를 존중한다고 하면서 바로 이어서 대통령의 사면권을 축소 내지 폐지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남용됐는지 몰라도 그것은 헌법의 규정이다. 야권 주자들이 일제히 내세우는 투표시간 연장도 이 원칙에 위배된다. 이 주장을 하려면 선거 시즌 이전에 했어야 한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투표하도록 하려면 선거일 휴무지정을 폐지해야 한다. 밤 9시, 10시까지 투표하는 나라는 모두 평일에 선거를 치른다. 지금은 게임의 룰을 변경할 상황이 아니다.

둘째, 보편화가 가능하려면 비인격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사람이나 대상에 따라 달리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투표시간 연장을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작년 서울시 주민투표 때 ‘나쁜 선거 착한 거부’라고 선동해 투표를 저지한 사람들이다. 야권후보 단일화는 늘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룰을 짜려고 해 여러 불협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셋째, 보편화 가능성은 공평무사해야 한다. 이 개념은 무조건 똑같이 사람들을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이를 일률적으로 똑같이 대우해선 안 된다는 개념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수사(修辭)는 근거도 없는 ‘보편적 복지’를 운운하며 복지정책을 호도한다. ‘공평무사’의 의미를 예시하면 이런 것이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똑같은 학습 자료를 나누어주는 것은 얼핏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못하다. 어떤 아이에게 그 자료는 매우 어려우며, 또 어떤 아이에게는 너무 쉬워서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다. 공정하려면 이 아이들의 수준과 흥미를 어느 정도는 고려해 학습 자료를 ‘분배’해 줘야 한다. 각종 무상복지 시리즈 공약은 이 원리를 잘못 해석하거나 아예 어기고 추진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10년 전에 직영급식이냐 위탁급식이냐를 두고 촉발된 학교급식 논쟁은 지나고 보니 결국 무상급식을 필두로 한 무상시리즈 확대의 전초전에 불과했다. 무상보육 확대도 공평무사의 원리를 어기기는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폐해를 지적했음에도 모든 대선 주자들이 무상복지를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정치지도자들의 비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무상복지확대는 우리나라의 재정을 파탄시켜 열등국가로 전락시킬 것이다.

끝으로 대선을 치르는 정치인과 정당의 ‘무개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등록금이 사립대학의 3분의 1~4분의 1에 불과한 교육대 앞에 ‘반값등록금 ××당이 하겠습니다’라는 각 정당의 현수막들이 걸려 있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교대생들을 상대로 등록금을 반값으로 해주겠다는 것이다. 무개념의 극치라 할 만한 일이다.

김정래 < 부산교대 교수·교육학 duke77@bnue.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