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생] 과일·야채만으로 부족해?…쏟아지는 효소제품 '오해와 진실'

효소가 신진대사 속도와 질 좌우…몸 속 효소 종류 5000종 넘어
부족하면 쉽게 피곤하고 귀울림

된장·고추장·김치·막걸리에 풍부…한국인 식습관으론 효소 부족 걱정할 필요없어
최근 들어 효소제품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각종 광고가 미디어를 통해 넘쳐난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개념도 추상적이지만 몸에 도대체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효소를 이용한 식사요법은 이른바 생식요법이나 소식(小食)과 유사하고 효소가 유산균인지, 식초인지, 발효식품인지 모호하다. 영양과잉 시대에 양약(洋藥)에 의존하지 않고 식품과 생활습관 교정으로 자연치유를 노리는 효소요법(酵素療法·Enzyme Therapy, Enzyme Nutrition)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이지만 정확한 지식으로 무장해 고가의 관련 제품을 남용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신체 내 5000종 효소 작용효소란 소화과정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의 신진대사에 관여하는 촉매제다. 몸속에는 약 5000종 이상의 효소가 작용하고 있다. 생명체 안에 존재하는 유기화합물의 종류가 수없이 많기 때문에 이것의 소화나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의 종류도 많을 수밖에 없다.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효소 가운데 약 3000종은 장내 세포 형성에 관여하기 때문에 장 건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효소요법 전문가들은 체내에 부족하기 쉬운 효소를 보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월 한국효소영양학회를 창립한 신창식 회장(아로마벨피부과 원장)은 “현대인은 고열을 가한 가공식품을 주로 먹는데다가 식단에서조차 농약·비료·산성화로 오염된 먹거리가 올라오기 때문에 식품 중 효소 존재량이 옛사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며 “여기에다가 과식·고열량 섭취로 체내 소화효소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효소결핍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효소 전문가들은 현생 인류는 약 17만년 전에 처음으로 나타나 줄곧 생식(生食)을 해왔으며, 이후 점점 문명화되면서 화식(火食)을 즐기게 됐고 효소 섭취가 점차 줄었으며 이로 인해 각종 질병이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가공식품뿐만 아니라 압력솥에 고온으로 찌어 짓는 밥이 모두 효소를 잃은 식품이라는 게 효소 전문가들의 견해다. 효소는 온도가 35~45도일 때 가장 활발하게 작용하고, 온도가 그 범위를 넘어서면 오히려 활성이 떨어진다고 연구돼 있다. 더욱이 작물들은 현대화된 농법과 환경오염에 의해 비타민 미네랄 등 보조효소를 많이 상실한 상태라는 설명이다.◆혈액 정화, 독소 배출 효과

전문가들은 효소가 함유된 음식이나 건강식품을 듬뿍 먹으면 망가지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 회장은 “효소가 여러 종류의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질 분자를 분해하는 작용을 하므로 음식물뿐만 아니라 혈액 찌꺼기, 과잉의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발암물질, 암종, 염증물질, 어혈(탁하게 뭉친 피), 병원체, 비정상조직, 혈관 침착물, 알레르기 유발물질, 멜라닌 색소(기미 주근깨 유발) 등을 용해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세포가 부활하고, 혈액이 정화되며, 독소가 배출되고, 세포에 영양분이 충만해져 위장질환 만성간염 간경변 암 고혈압 당뇨병 비만 알레르기 불면증이 예방 또는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이다.

효소식품은 야채효소(과채류 효소)와 곡류효소(현미발효 효소) 등이 가장 많이 팔리고 대중들의 인지도도 높다. 야채효소로는 산야초를 비롯해 케일, 토마토, 방울토마토, 살구, 약호박, 냉이, 익모초, 원두충, 솔잎, 쇠뜨기, 양배추, 양파, 매실, 마늘 등을 발효시켜 만든다. 정확한 공법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떤 업체의 경우 과채류를 2년간 발효시켜 추출한다고 내세운다. 하지만 이를 확인할 길이 없으며 오래 발효시켰다고 해서 좋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 대부분의 효소제품은 식물성 재료에 설탕을 1 대 1의 비율로 섞어서 1주일~1개월가량 발효시켜 액체를 추출하거나, 이런 액체를 말린 것이다.◆시중 효소제품 기능성 확인 안돼

요즘에는 곡물효소가 인기인데 이들 제품은 발효시킨 음료 또는 과채류를 곡물에 섞어 한 번 더 발효시킨 다음 건조시켜 포장한 것으로 그 효과가 검증된 것은 아니다.

김달래 김달래한의원 원장(전 경희대 한의대 교수)은 “효소를 생산·판매하는 사람들은 발효과정에서 부패를 방지하고 삼투압으로 유효물질을 추출하기 위해 과도한 설탕을 투여하면서도 발효가 마무리됐을 때에도 설탕을 제거하지 않는다”며 “효소가 얼마나 들었는지 알 길이 없고 자칫 설탕 범벅을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김 원장은 “10여년 전에 나온 효소제품 중에는 포도즙 사과즙 배즙처럼 중탕하거나 약한 열을 가한 후 추출, 파우치팩에 담은 과채즙 형태나 녹즙 형태가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등장한 효소제품은 효소의 함량이나 활성을 높이려는 흔적이 역력하지만 얼마나 기능성이 개선됐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오히려 차로 달여서 마시거나 즙을 내서 마시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부패나 오염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소화기관이 건강한 사람은 싱싱한 과일이나 야채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효소를 다량 흡수하게 돼 있다”며 “특히 한국인은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 막걸리, 유산균 등을 통해 효소를 섭취할 수 있어 효소 부족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들 전통 발효음식에는 필수아미노산 또는 유용한 유기산과 효소가 듬뿍 들어 있다는 설명이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신창식 한국효소영양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