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절벽 겁나서…美기업 설비투자 '뚝'

7분기만에 마이너스…유럽·中 수출 감소로 '쉬는 공장'도 늘어

미국 기업들이 다시 웅크리고 있다. 미래를 위한 설비투자를 빠른 속도로 줄이고 있는 것. 유럽의 경기침체와 중국의 성장률 둔화 등 글로벌 경영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 감세 혜택 종료와 재정지출 축소로 경제에 충격을 주는 ‘재정절벽’ 우려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기업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기업들의 설비투자 덕분에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마저 둔화하면서 미국 경기 회복세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미국 혼자 성장할 수 없다19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 산하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3분기 설비투자는 1.3% 줄어들었다. 미국이 경기침체 종료를 공식 선언한 2010년 9월 이후 설비투자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지난해 1분기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기업활동의 활력을 보여주는 장비 및 소프트웨어 투자는 2009년 3분기 이후 처음으로 0% 성장률을 기록했다. 공장 등 신규 건물 투자는 4.4% 감소했다.

최근 미시간대가 발표한 소비자 신뢰지수는 지난달 82.6을 기록해 2007년 9월 이후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고 있는 건 무엇보다 수출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유럽은 이미 경기침체에 접어들었고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던 중국마저 성장률이 둔화된 탓이다.

중장비 제조업체인 캐터필러는 올초 연간 40억달러의 설비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최근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며 내년 설비투자는 더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내 석탄 등 광물자원 수요가 감소하면서 채굴 활동도 줄어 현지 기업들이 중장비 생산 주문을 중단했기 때문이다.정보기술(IT) 업계도 마찬가지다. 인텔은 지난달 유휴 공장 부지와 설비를 신제품 제조를 위한 시설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반도체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 더 이상 공장을 돌리기 힘들어진 탓이다. 인텔은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당초 예상치인 125억달러에서 113억달러로 줄였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투자 꺼려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모임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이 분기마다 조사하는 CEO들의 경기전망지수는 3분기 66.0으로 2009년 2분기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CEO들은 특히 내년 1월 현실화될 수도 있는 ‘재정절벽’ 가능성을 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았다. 총 6000억달러에 달하는 감세 종료와 재정지출 삭감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미국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형 토목회사인 플로어의 데이비드 시튼 CEO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지 않으면 기업들은 계속 현금을 깔고 앉아 있거나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돌려줄 것”이라며 “이는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설비투자가 줄어든 시점이 재정절벽 우려와 맞물려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