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미스터 빈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지난 7월 말 런던올림픽 개막식 막간공연. 사이먼 래틀 경이 지휘하는 런던필하모닉이 장엄하게 영화 ‘불의 전차’의 OST를 연주한다. 카메라가 키보드 주자를 비추는데 모두 박장대소다. 미스터 빈이 앉아 한 음만 계속 눌러댄다. 스크린에는 미스터 빈이 ‘불의 전차’의 도입부에 등장해 달리는 장면이 나오며 세계인의 배꼽을 빼놓는다.

코미디 시리즈 ‘미스터 빈(Mr. Bean)’의 주인공 본명은 로완 앳킨슨(57)이다. 1978년 데뷔했고 출세작은 1982년 시트콤 사극 ‘블랙 애더’다. 중세 배경의 ‘블랙 애더’에서 앳킨슨은 에든버러 공작으로 등장해 이듬해 국제에이미상 등 각종 코미디상을 휩쓸었다. 영국에선 ‘국민 코미디언’ 대접을 받는다. 진짜 VIP만 초청하는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의 결혼식,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에도 정식 초청을 받았을 정도다. 앳킨슨의 페이스북 팬클럽 회원은 3000만명이 넘는다.사람들은 앳킨슨을 보고 세 번 놀란다고 한다. 첫째 키가 작아 보이는데 실제로는 180㎝다. 껑충한 바지에 천의 얼굴을 지녀 제2의 찰리 채플린으로도 불린다. 둘째 진짜 바보인 줄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바보연기의 달인이지만 명문 옥스퍼드대 전기공학과를 나왔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는 어릴 때부터 친구다.

셋째 행동이 굼뜰 것 같은데 실은 스피드광이다. 경주용차 아스톤마틴 시리즈를 갖고 있고 레이스에 참가하기도 했다. 영국 자동차 전문지 ‘CAR’에 기고도 한다. 작년에 그는 100만달러짜리 맥라렌 F1(포퓰러원) 슈퍼카로 600달러짜리 경차 꽁무니를 들이받아 입원한 적도 있다. 영화 ‘자니 잉글리시2’에선 시속 72㎞까지 달리도록 특수제작된 횔체어를 타고 대역 없이 고속질주 장면을 소화해냈다.

앳킨슨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것은 1989년 BBC의 ‘미스터 빈’ 시리즈다. 옥스퍼드에서 만난 작가 리처드 커티스(‘노팅 힐’ 작가, ‘러브 액추얼리’ 감독)와 ‘블랙 애더’를 성공시킨 이후 다시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미스터 빈은 BBC 최고 시청률에다 94개국에서 방영됐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미스터 빈은 어른의 몸에 10살 소년의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게 앳킨슨의 설명이다.오로지 코믹한 표정과 과장된 동작으로 전 세계 남녀노소를 즐겁게 만들어준 앳킨슨이 미스터 빈 은퇴를 선언해 팬들을 안타깝게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상업적으론 성공했지만 50대의 나이에 유치한 연기를 하는 게 좀 슬프다”며 “앞으론 진지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미스터 빈이 없으면 명절연휴는 어떻게 보내지?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