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에 건보재정 '골병'

고혈압·당뇨 등 성인 54%가 시달려…진료비 연15조
건강보험공단 "예방 중심 주치의制 발전시켜야"
미국의 헬스케어 서비스 회사 케어모어는 신부전증과 고혈압을 앓고 있는 노인 고객들에게 체중계와 혈압측정계를 준다. 고객들이 매일 혈압과 체중을 측정하면 이 정보는 무선을 통해 케어모어 소속 간호사들에게 전달된다. 혈압과 몸무게에 변동이 있으면 케어모어는 즉각 차량을 보내 환자를 병원으로 싣고 간다. 예방적 치료를 통해 병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케어모어 서비스는 치료 중심의 미국 의료계에서 고객의 건강을 지키고 보험료 지출을 아끼는 혁신적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고혈압 당뇨 심장병 등 만성질환 환자가 급증함에 따라 치료 중심의 의료체계를 예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어나며 진료비가 급증해 건강보험 재정을 압박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23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등 11개 만성질환에 대한 진료비 총액은 2010년 15조2382억원에 달했다. 2002년 4조6788억원이던 만성질환 진료비는 8년 만에 세 배 넘게 증가했다. 또 2010년 전체 진료비 총액의 35%에 이르러 건강보험 재정의 주요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혈압 당뇨병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갑상선장애 등 건보가 분류한 5대 만성질환의 진료비만도 2010년 6조원을 넘어섰다.

만성질환은 병세가 6개월에서 1년 이상 지속되는 병으로 급성질환과 대비되는 말이다. 국내에서는 5대 만성질환 외에 정신 및 행동장애, 호흡기결핵, 신경계질환, 간질환, 만성신부전증, 악성종양 등 11가지 질병이 만성질환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 만성질환은 이미 심각한 상태에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조사한 결과 20세 이상 성인 중 54.3%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특히 50대는 68.7%, 60대는 83.7%, 70대 이상은 91.3%가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양병국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만성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삶의 질 악화, 높은 사망률, 의료비 부담 과다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혈압에 따른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상대적으로 만성질환 환자가 많은 이유는 의료시스템이 예방이 아니라 치료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차 의료기관(동네병원) 중심의 주치의 제도와 보건소 역할 확대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김혜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건소를 지역 건강관리 사업의 센터로 만든 뒤 이를 지역 병원과 요양센터, 학교 등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소를 통해 질병 예방 사업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신호성 원광대 치과대학 교수는 “만성질환 프로그램은 환자 중심의 주치의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주치의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1차 의료기관이 담당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