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미텔슈탄트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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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 중소기업청이 하는 주장이다. 미국도 그런 모양이다. 미국 중기청(SBA)은 그 증거로 500명 이하 소기업이 전체 사업체의 99.7%라고 말한다. 마치 우리 중기청이 전체 사업체의 99.9%가 중소기업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미국 학자들은 이렇게 많은 사업체를 한 범주에 집어 넣는 게 말이 되냐고 한다. 이들은 소기업을 세 그룹, 즉 10명 미만 마이크로 기업, 10~49명의 소기업, 50~499명의 중기업으로 나누고 대기업을 추가해 1992~2008년 새 일자리(net job)를 분석했다.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기존 소기업군(群)에서 4%밖에 안 되는 중기업이 전체 일자리의 30%를 창출했다. 반면 79%인 마이크로 기업의 일자리 창출은 그 절반에 불과했다. 대기업이냐, 소기업이냐의 이분법 탓에 정작 중기업의 존재가 가려졌던 것이다. 이쯤 되면 “중간이 아름답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위기에 강한 중기업 재발견 종업원 500명, 연 매출 5000만유로 미만인 ‘독일의 미텔슈탄트(Mittelstand·중견기업)’ 열풍이 불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독일의 빠른 회복세가 미텔슈탄트의 경쟁력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어서다.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미국은 ‘중기업 재발견’ 분위기다. 미국에서 연 매출 1000만~10억달러의 중기업은 약 19만7000개다. 고용인원만 4000만명이 넘는다. 이 중 82%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암흑기에도 살아남았다. 소기업의 57%보다 훨씬 높은 생존율이다. 미국 중기업과 독일 미텔슈탄트는 공통점도 많다. 지역 집적, 평균기업연수 31년, 가족소유 형태다. 어려운 시기에 장기투자도 했고, 높은 글로벌화 성향까지 닮았다. 미텔슈탄트가 독일경제의 ‘히든챔피언’이라면 미국 중기업은 ‘소리없는 영웅(unsung hero)’으로 불린다. 그런 미국 중기업도 고민이 있었다. 면제조항이 많은 소기업, 변호사 군단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미국 중기업은 당장 오바마 행정부의 새 건강보험제도를 걱정하고 있다.
기업가정신이 본질이다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독일 흉내 내기에 바쁘다. 프랑스판 미텔슈탄트 ETI를 만들었다. 종업원 250~5000명, 매출액 15억유로 미만 기업이다. 이런 기업은 프랑스보다 독일이 두 배나 많다. 프랑스가 질투를 할 만하다. 문제는 프랑스의 중앙집중식 방식이다. 프랑스는 베를린이 독일 미텔슈탄트의 기적을 만들었다고 믿는 모양이다. 사르코지는 바로 정부지원 펀드부터 만들었다. 올랑드는 아예 ETI용 새 은행을 설립했다. 파리 중심의 전형적 톱-다운 방식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 점을 꼬집었다. 정부가 돈 때려 넣는 걸 무슨 마술 지팡이인 줄 안다고,미텔슈탄트 버전은 한국에도 있다. 중소기업법상 중소기업이 아니면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지 않은 이른바 중견기업이다. 이코노미스트지가 한국도 분석했다면 뭐라 했을까. 아마도 프랑스를 닮았다고 했을지 모르겠다. 수두룩한 규제도 지적했을 거다. 미국 중기업은 새 건강보험을 우려한다지만 우리는 중소기업을 벗어나면 190개 규제가 새로 생긴다. 대기업이 되면 84개 규제가 또 기다린다. 여기에 내년부터는 40여개 규제가 경제민주화 이름으로 들이닥친다. 전후 서독 부흥을 이끈 에르하르트는 말했다. “미텔슈탄트는 단순한 숫자 (정의, 육성 목표 등)의 의미가 아니다. 그건 마인드와 구체적 태도의 표현이다.” 미텔슈탄트는 바로 기업가정신이라는 얘기다. ‘관 주도’와 ‘규제’가 한국의 미텔슈탄트를 죽이고 있다.
안현실 <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