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제조·마케팅·재무 '삼위일체'…처음부터 세계시장에 도전

Best Practice - 칠레의 와인 브랜드 몬테스

위성센터서 지질학 정보 받고 토질 분석 장치 총동원
포도밭에 적합한 새 땅 찾아

죽음 문턱 여러번 넘은 동업자…"천사를 와인에 담고 싶다"
기억하기 쉬운 브랜드 만들어내

500만병. 칠레의 와인브랜드 몬테스가 지난 12년간 한국에서 판 와인의 누적 판매량이다. 1분에 한 병꼴로 팔린 셈이다. 몬테스의 대중적인 브랜드 ‘몬테스 알파’의 가격대가 병당 3만원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판매량이다. 한국 언론들이 ‘와인 수입가격 폭리’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쓸 때면 항상 몬테스의 가격을 분석한 내용이 포함된다. 그만큼 한국에서 와인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몬테스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뿐만이 아니다. 몬테스는 캘리포니아의 와인 생산지역인 나파밸리로 유명한 미국에서도 2000년과 2002년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와인’으로 꼽혔다. 연간 생산량은 1000만병. 세계 110개국에 와인을 팔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과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에서는 몬테스의 스토리를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시켰다. 몬테스는 칠레를 넘어 아르헨티나와 미국에도 와이너리(와인 양조장)를 갖고 있다. 몬테스는 1988년 세워졌다. 이제 30년 조금 넘은 브랜드다. 칠레의 명품 와인 ‘알마비바’처럼 프랑스와 합작으로 만든 게 아니라 순수 칠레 와인업체다. 하지만 세계 와인 시장에서 몬테스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 됐다.

◆“세계를 정복할 칠레 와인을 만들자”

칠레 와인의 역사는 짧지 않다. 1855년 프랑스 나폴레옹 3세가 만국박람회를 열었을 때 와인용 묘목을 수입했고, 1860년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유럽에서는 뿌리혹박테리아의 창궐로 순수 품종은 모두 사라졌다. 지금은 모두 미국 나무와의 교배종을 쓴다. 하지만 칠레는 1855년 당시 수입한 프랑스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데다 일조량도 많아 재배환경도 유럽보다 낫다는 평을 받는다. 칠레 와인업자들은 “유럽 와인의 정통성은 우리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마케팅은 형편없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칠레 와인은 변방의 싸구려 제품 정도로 취급받았다. 칠레 와인업자들은 내수용 와인만 만들었을 뿐 세계인의 입맛에는 무관심했다. 칠레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운드라가, 산 페트로 등 유서 깊은 와이너리에서 일하던 아우렐리오 몬테스 몬테스 회장은 “세계를 정복할 칠레 와인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몬테스 회장은 시작부터 세계 시장을 공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전문성을 뒷받침해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 세계에 팔아줄 동료들을 찾았다. 수출 마케팅 전문가 더글러스 머레이, 재무 전문가 알프레도 비다우레, 제조 전문가 페드로 그란드가 의기 투합했다. 생산뿐 아니라 판매도 염두에 둔 것이다.

품질엔 자신이 있었지만 세계 시장에 알리는 게 문제였다. 고심 끝에 잘 만든 와인 한 병을 영국에 보냈다. 수신인은 권위있는 와인 평론가 오즈 클라크. 기존 칠레 와인과는 다른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이었다. 라벨도 붙이지 않고 손글씨로 이름만 적었다. 클라크는 낯선 와인을 마시고는 “드디어 칠레에서도 응축된 와인이 나왔다”고 호평했다. 전문가의 한마디는 몬테스, 나아가 칠레 와인의 이미지를 바꿔놨다.◆좋은 품질, 간명한 이미지

몬테스 회장은 처음부터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고 싶어했다. 일단 일조량이 많고 영양이 풍부한 좋은 땅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그는 기존 와인 생산지에 밭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인공위성센터에서 지질학 정보를 받았고, 토양이 머금고 있는 수분과 영양분을 분석하는 장치도 동원했다. 몬테스가 자리한 아팔타, 마르치구, 레이다 등의 포도밭은 칠레의 전통적인 와인 생산지가 아니었다. 새로운 땅을 찾아낸 것이다.

몬테스는 포도를 밤에만 수확한다. 포도알은 낮에 숨을 쉬기 때문에 밤에 산미와 당분 등이 더 짙어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와인 생산자들은 1ha(1만㎡)에서 40 정도의 와인을 만들지만 몬테스는 평균 3.5 정도만 생산한다. 저장고에는 항상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는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몬테스 회장이 “같은 가격대에선 어떤 프랑스 와인보다 낫다”고 자신한 배경에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고집이 배어 있다. 좋은 품질엔 스토리를 더했다. 몬테스 라벨에 그려진 천사는 공동창업자인 머레이가 창안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동차 사고, 암 등으로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겼다. 머레이는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지켜준 천사를 와인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라벨에 새겨진 수호천사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간명한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줬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몬테스의 성공 비결을 “기억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몬테스가 처음 칠레에서 ‘시라’라는 포도품종을 심었을 때다. 칠레에선 처음으로 기울기가 45도 이상인 급격한 경사면에서 포도를 심는 방법을 도입했다. 밭의 기울기가 커야 아침 저녁의 일조량, 기온차가 커 더 깊은 맛을 가진 포도가 나온다. 프랑스 부르고뉴 등의 고급 와이너리에서 많이 쓰는 방법이지만 암벽타기를 하듯이 줄에 매달려 포도를 따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두 배 이상 들어간다.


몬테스가 이 방법을 도입하자 일부 칠레 와인업자들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몬테스는 이 밭에서 생산한 시라를 사용해 훌륭한 와인을 만들었고 이름을 ‘몬테스 폴리(folly·어리석은 행동)’라고 붙였다. ‘바보같더라도 최고의 와인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2003년 칠레 고유의 포도 품종인 카르메네르로 고급 와인 ‘퍼플 앤젤’을 만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몬테스 회장은 프랑스 스타일이 아닌 ‘칠레만의 맛’을 알리고 싶어했다. 하지만 프랑스 품종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은 카르메네르를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최고급 와인) 몬테스 알파 M을 만들지만 내 마음은 퍼플앤젤에 있다”고 말했다. 17세기 말 프랑스 와인의 왕자로 불렸던 세귀르 후작이 “내가 (1등급 와인인) 샤토 라피트와 라투르를 만들지만 내 마음은 칼롱에 있다”며 3등급인 샤토 칼롱 세귀르를 극찬한 것을 흉내낸 것이다. 병당 15만원이 넘는 퍼플앤젤은 “M보다는 낮은 등급이지만 몬테스 회장이 마음을 쏟은 와인”이라는 입소문에 지난해 국내에서 수입량의 90% 이상이 판매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