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자 23만명·26조원, 가계부채 '뇌관'

금감원 주택담보대출 리스크 분석해 보니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 전수조사를 통해 2일 발표한 ‘주택담보대출 리스크 현황’에는 ‘깡통주택’ 규모뿐 아니라 △저신용 다중채무 △1개월 이상 연체 차주 △비은행 후순위 대출 △LTV(주택담보인정비율) 초과 대출 등에 관한 통계가 망라돼 있다. 그동안 가계부채 문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았던 분야들이다.

이번 전수조사에서는 특히 저신용자들이 여러 금융회사에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린 규모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저신용·다중채무자들은 “경기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부실화할 가능성이 큰 취약계층”(권혁세 금감원장)으로 지목돼온 사람들이다.금감원에 따르면 9월 말 기준으로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자 23만명은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25조6000억원을 빌렸다. 금감원은 이들이 주택담보대출금이 예상 경매 낙찰가율을 초과하는 ‘깡통주택’ 보유자들과 상당수 겹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저신용·다중채무자의 99.2%가 단위 농협, 신협, 카드, 저축은행 등과 같은 비은행권에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는 점이다. 전체 저신용자의 다중채무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98.8%에 달했다.

저신용·다중채무자 가운데 ‘은행+비은행’ 대출자는 16만명(18조3000억원)이었고, 3곳 이상의 비은행권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고위험군 다중채무자’도 7만명(7조원)에 달했다.금감원 관계자는 “신용이 나쁜 사람들은 비은행권에서 높은 금리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만큼 상환 능력이 거의 소진됐다고 보면 된다”며 “앞으로 집값이 더 떨어지면 가장 먼저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50세 이상 고령층 저신용·다중채무자 역시 9만명(11조1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 비은행만을 이용하는 고령층 대출자는 3만명(2조9000억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저신용자의 상환 능력 악화는 연체로 이어지고 있다. 전 금융권에서 당장 부실 위험이 있는 1개월 이상 주택담보대출 연체자 4만명 모두가 7등급 이하 저신용자 인 것으로 나타났다.금감원은 주택담보대출 연체자들은 빚이 여러 금융회사에 걸쳐 있어 은행권 단독으로 진행하는 프리워크아웃(사전 채무 조정),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신탁 후 임대) 등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고위험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정밀검사에 나설 예정이다. 이기연 금감원 부원장보는 “1개월 이상 주택담보대출 연체자 4만명과 LTV가 80%를 초과하는 대출자 4만명을 대상으로 정밀 점검을 실시한다”며 “가계부채 대응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해 고위험군 부실화 가능성에 선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이 같은 진단에도 가계부채 관련 종합대책은 대통령 선거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대선이 끝나야 실효성 있는 처방과 해법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깡통주택

집을 팔아도 금융사 부채를 다 갚지 못하는 주택. KB금융연구소는 주택담보대출과 전세금 합산액이 주택 매매가의 80%를 넘는 집 18만5000채를 깡통주택으로 분석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사가 주택을 경매 처분하더라도 대출금을 모두 회수할 수 없는 경우로 정의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