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군것질 소사(小史)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술래잡기 말뚝박기 하던 어린 시절에 먹던 뽑기 라면땅 번데기 쫀득이…. 이름만 들어도 아련한 추억의 군것질거리다. 장년층이라면 여름철 ‘아이스케키’를 먹고 배탈난 적이 한두번은 있을 것이다. 산업화시대 아이들은 그렇게 자랐다.

군것질은 끼니 외에 먹는 군음식이다. 주전부리, 입치레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군것질을 채신머리 없다고 봤다. 그러나 영조의 모후 인원왕후는 절편 병자(餠炙) 등 떡을 좋아했고 숙종 영조는 타락죽(우유죽)을 즐겨 먹었다. 영화 ‘광해’에도 다양한 왕실 주전부리가 등장한다.하지만 옛날 아이들은 늘 배고팠다. 산과 들로 오디 산딸기 깜부기를 찾아다녔다. 깜부기는 쌀·보리 이삭이 깜부기균에 감염돼 까맣게 변한 것인 줄도 모르고 입주위가 까매지도록 따먹었다. 집안 물건을 들고나가 엿 강냉이와 바꿔 먹다 야단맞기 일쑤였다.

군것질 하면 1950년대 등장한 뽑기를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연탄불로 누런 설탕을 녹여 소다로 부풀린 뒤 철판으로 눌러 납작하게 만들었다. 경상도에선 달고나라고 하는데 설탕 대신 흰 포도당 덩어리를 썼다.

‘3000만의 영양식’ 번데기는 1960년대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견직산업 번창기의 산물이다. 당시엔 서울대 잠사학과가 인기였고 권영길 김창완이 잠사학과 출신이다. 하지만 식중독 사고도 잦았다. 1978년 구멍가게에서 번데기를 사먹은 어린이 10명이 사망했다. 번데기 재료를 맹독성 농약이 묻은 마대에 담았던 탓이다.1970년대 중반엔 일본 센베이 기계를 개조해 만든 뻥튀기가 나왔다. 쌀 몇십알을 압착시키면 접시만한 과자로 변해 마술 같았다. 요즘에 뻥튀기는 침소봉대란 의미로 더 익숙하다. 번데기 다이어트, 뻥튀기 다이어트까지 성행한다니 격세지감이다.

라면 부스러기를 튀긴 라면땅이 한때 군것질 시장을 평정한 적도 있다. 라면땅은 ‘엄마, 10원만!’하고 조르면 살 수 있었다. 쫀득이는 연탄불에 구워먹으면 씹는 맛이 그만이었다. 이런 풍경들은 지금 청계천 판잣집 테마촌에 가면 한 눈에 볼 수 있다.

군것질은 대개 단맛이다. 서양의 마카롱 슈니발렌, 일본 화과자도 정말 달다. 단맛 선호는 쓴맛 신맛과 달리 인류 공통이다. 원시시대 굶주림의 기억이 유전자에 각인된 결과다. 단맛, 즉 포도당은 바로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술 과일 선호도 마찬가지다.한경과 비씨카드가 자영업자 매출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올 들어 김밥 토스트 등 저가 음식점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끼니를 때우거나 군것질거리로 값싼 ‘김떡순’(김밥 떡볶이 순대)류가 잘나간다는 얘기다. 불황의 또다른 단면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