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깡통주택에 '깡통대책'

박영신 건설부동산부장 yspark@hankyung.com
깡통주택. 당장 집을 경매에 넘겨도 대출금도 못 건지는 ‘애물단지 주택’을 이렇게 부른다. 이런 집을 가진 사람이 전국적으로 19만명에 이른다. 대출액수로는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3.3%인 13조원에 달한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내놓은 첫 실태조사 결과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이들 주택이 ‘경매봇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경기불황과 맞물린 부동산시장 침체가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깡통주택 증가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어서다. '깡통주택 대란' 징조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수도권 주택경매건수가 2만6000여건으로 작년 한 해 물량을 초과했다. 집값이 대출금과 전세금을 합친 금액보다도 더 떨어지면서, 채무상환 미이행자의 주택을 압류한 금융권이 잇따라 경매처분에 나서고 있어서다. 깡통주택이 경매에 나오면 수차례 유찰되다가 대출금보다 휠씬 낮은 헐값에 팔리게 된다.

후유증도 커지고 있다. 깡통주택 경매로 상반기에만 돈 한 푼 못 받고 쫓겨난 세입자가 1500가구에 육박했다. 금융권 부실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제2금융권이 안고 있는 깡통주택이 전체의 66%여서 경매봇물로 이어질 경우 금융권 전체가 심각한 ‘깡통주택 쓰나미’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당국과 금융업계의 인식은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실효성 없는 ‘깡통대책’으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9월 집주인에게 법원경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팔 수 있도록 석 달간의 말미를 주는 ‘경매유예제도’를 내놨다. 그런데 신청건수는 3건에 불과했고, 그 중에 한 사람만 집을 팔았다.

금융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은행만 대책을 내놨다. 집주인이 소유권을 은행에 넘기고 월세로 거주하는 ‘신탁 후 재임대’ 방식을 시행했다. 반응은 냉랭하다. 아직까지 신청자가 한 명도 없다. ‘대책’이란 말이 무색하다. 이 같은 대출 연장과 이자 깎아주기 방식은 집값이 오르지 않는 한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유형과 세입자 상환능력 등 세밀한 상황분석부터 해야 한다. 은행은 이를 토대로 손실을 집주인과 공동부담하는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대출 연장과 정리 대상을 구분해서 탄력적으로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금융사와 집주인들은 모두 책임 당사자다. 어느 한쪽에 피해를 떠넘기면 안 된다. 금융권은 이번 상황이 공적자금 투입사태로 비화할 경우 엄청난 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은행들은 과거 부실위기 때마다 막대한 공적자금으로 회생해왔기 때문이다.

주택거래 활성화에 나서야

정부와 국회도 보다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가 됐다. 깡통주택 대란은 주택거래 부진과 집값 하락, 경기불황 등이 핵심 원인이다. 경기불황과 주택 공급과잉 등 거시경제 요인은 어찌할 수 없지만, 단기처방은 가능하다. 취득세 감면 연장, 양도세 중과 폐지 등 거래 활성화에 효과가 큰 정책을 마련하는 데 인색해선 안 된다. ‘부자감세’, 주택가격 급등 등 철 지난 얘기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뇌관도 미국의 깡통주택 대란이었다. 저신용자에게 흥청망청 주택대출을 해줬다가 발생한 난리가 서브프라임 모지기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였다. 미국의 대가 지불은 혹독했다. 타산지석으로 되새겨 볼 때다.

박영신 건설부동산부장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