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신춘문예 마감 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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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꼭 20년 전 오늘. 막바지 퇴고 작업을 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다듬고 다듬어도 군더더기가 없어지지 않았다. 몇 편을 또 추렸다.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는데, 이러다 남는 작품이 하나도 없으면 어떡하나. 또 몇 편을 솎아냈다. 드디어 운명의 날. 마감 시간은 빙벽처럼 다가왔다. 겉봉에 ‘신춘문예 응모작품-시 부문’이라고 쓰고는 신문사로 내달렸다.
어떻게 도착했는지 모르겠다. 갓난아기를 맡기듯이 원고를 두 손으로 보듬어 올려 놓고 돌아나오는 등 뒤가 시큰했다.그로부터 열 이틀 후, 야근으로 녹초가 된 다음날 오전. 늦잠 끝에 물소리 같은 전화를 받았다. 당선 통보였다. 내 생애 가장 뜨겁고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머리에 눈을 가득 이고 선 북한산이 엷은 미소로 축하해주던 그 순간….
가혹한 만큼 영예로운 등용문
오늘도 수많은 문학청년들이 신춘문예의 열병을 앓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소설로 입선한 소설가 최인호 씨도 그랬다. 수상식장에 교복 차림으로 나타난 열여덟 살짜리 까까머리를 보고 신문사가 기겁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4년 뒤 공군 병사로 입대한 그가 신병훈련소에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듣고는 ‘당선 소감까지 미리 써뒀다’며 너스레를 떨었다던가. 그 덕분에 동료 훈련병들이 전무후무한 특별 외출을 다녀올 수 있었던 일도 두고두고 회자된다.소설가 황순원 김동리 등과 시인 서정주 신동엽 조태일 등 ‘국보급 문인’들이 신춘문예를 통해 세상과 만났다. 최다 당선 기록을 갖고 있는 시인 이근배 씨는 1961년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국일보 등 3개 신문에 각기 다른 작품으로 당선됐고 이듬해 동아일보와 1964년 조선일보 시조에도 당선돼 ‘신춘문예 5관왕’을 이뤘다.
1920~1930년대 시 부문에서 낙선작 가운데 아까운 작품들을 선외 가작으로 뽑은 적도 있지만, 신춘문예는 한 장르에 딱 한 명만 뽑는다. 그만큼 가혹한 제도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를 풍미하고 아직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고 기형도 시인도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연거푸 떨어지고 1985년에야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처럼 가혹하기 때문에 가장 영예로운 등용문으로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다.
심사 기준은 크게 세 가지.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과 삶에 대한 절실한 고민, 회화적 이미지를 살린 표현법, 신선한 작가정신 등을 높이 산다. 겉멋 든 첫 문장, 형용사와 부사 남발, 현장감 없는 묘사 등은 금물이다.‘한경 청년신춘문예’ 12일 마감
한국경제신문이 창간 49주년을 맞아 신설한 ‘2013 한경 청년신춘문예’는 더 새롭고 참신한 세계를 지향한다.
여타 신춘문예와 다른 점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만 34세 이하 젊은이들이 펼치는 ‘젊은 문학’의 향연이라는 것이다. 뜨거운 열정과 드높은 꿈을 향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청년 시인·작가들의 경연장이다.
시(500만원), 장편소설(2000만원), 시나리오(500만원), 게임 스토리(500만원) 등 4개 분야에 총 3500만원의 고료를 걸고 첨단 영상 시대의 원천 콘텐츠를 발굴하는 이 축제에 대학생 등 이 시대의 청춘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청년신춘문예 마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 땅의 청년 문학도들이여. 아름답게 도전하자. 청춘의 푸른 문장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자.
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