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블랙컨슈머에 운다

개콘 '정여사'는 애교…206회 환불 요구로 수억 챙겨
가전·의류·식품업체 피해 속출…행정기관은 '블랙 민원인' 골치
상품에 문제가 있다며 과도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컨슈머’ 때문에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자신의 뜻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직원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붓고 야구방망이까지 들고가 수억원을 뜯어낸 예비역 대위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A사 스마트폰과 냉장고, 컴퓨터 등을 구입한 뒤 해당 제품이 고장났다며 직원들을 협박, 보상금으로 2억4000여만원을 뜯어낸 혐의(사기 등)로 이모씨(56)를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이씨가 2010년 3월부터 지난 9월까지 2년6개월 동안 고장 등을 이유로 보상금을 타낸 횟수는 206차례에 달한다. 1주일에 두 번꼴이다. KBS 2TV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정여사’ 코너에서 터무니없는 트집으로 환불을 요구하는 정여사는 애교로 보일 정도다.

이씨는 가족과 지인 등 명의로 A사의 최신 스마트폰 22대를 구입한 후 B통신사에서 개통→정지→해지→개통을 반복했다. B통신사 대리점을 수시로 찾아가 직원들에게 생트집을 잡기 위해서다. 이씨는 직원들에게 ‘고객 응대가 불량하다’며 갖은 욕설을 담아 행패를 부렸고, 야구방망이를 들고가 위협했다. 이씨의 막무가내 협박에 직원들은 합의금을 건네거나 500만원대 휴대폰 요금을 대신 내줬다.

이씨는 또 A사 중고 스마트폰을 인터넷에서 구입한 뒤 ‘화면색감 불량’ 등 증상을 명확히 파악하기 힘든 고장 원인을 내세워 A사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의뢰, 끝내 교환·환불을 받아냈다. 블랙컨슈머들로 인한 기업의 피해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지난 3월 손모씨(33)는 서울 목동의 한 의류매장에서 “새로 구매한 티셔츠의 물이 빠져 태아에 나쁜 영향을 줬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이 옷은 이곳에서 구입한 것이 아니었고, 임신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0월에는 음식을 먹다 다쳤다며 음식점 식품회사 등을 상대로 2년간 829회에 걸쳐 9414만원을 뜯어낸 임모씨가 경찰에 검거됐다.

행정기관들도 터무니없는 민원을 제기하는 민원인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로공사 때문에 집에 금이 생겼다고 피해 보상을 요구한 김모 할머니(75)는 2005년부터 지난달까지 국회 새누리당 행정안전부 경남도청 등 정부기관 40곳을 찾아 다니며 보상을 요구했고, 3명의 공무원을 고소했다. 합천군청은 김 할머니의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대책회의를 열 번 열고 군수 면담을 다섯 번 중재했지만 실패했다.

이지훈/김우섭 기자 lizi@hankyung.com■ 블랙 컨슈머

black consumer. 제품을 구매한 뒤 상습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를 의미한다. 고장나거나 변질한 제품으로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 과정에서 언론에 공개하겠다며 협박하기도 한다. 부정적 의미의 블랙(black)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nsumer)를 합성한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