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社 1병영] 김춘선 인천항만공사 사장 "한배를 탔다"는 해군정신 '조직관리 제1덕목'

나의 병영 이야기

1979년 해군학사 70기로 입대…동기 20~30명 지금도 '번개팅'
軍서 배운 좌우명 '자율·규율'

“귀관!”, “필승! 14번 사후생(사관후보생의 줄임말) 김춘선!” “차렷 자세에 움직여도 되나?”, “아닙니다!” “그런데 왜 흔들흔들거리나?”, “시정하겠습니다!”

1979년 3월26일. 이렇게 목청 높여 외치고 기합을 받으면서 나와 400여명의 해군 학사장교 70기 동기생들의 3년 군 생활은 시작됐다. 사회에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다 엄격한 규율과 통제가 있는 군생활을 겪으면서 우리들은 투철한 국가관을 가진, 대한민국의 강인한 해군장교로 다시 태어났다.흔히들 군생활이라면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젊은 시절의 군 복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의미있는 기간이고 오히려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군 복무 당사자에겐 행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훈련 초기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래알 같았던 동료들이 단체 훈련을 계속 받으면서 동기애로 똘똘 뭉쳐지고 있음을, 서로가 믿고 의지하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전우애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의지를 충전하는 밑바탕이 됐다.

입대 초기 훈련 과정에서 기른 체력과 인내심, 극기심은 지금도 내가 어떤 최악의 일을 맞닥뜨려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정신력을 갖게 된 원동력이 됐다.뿐만 아니다. 군 동기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와중에서도 튼튼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때 맺어진 끈끈한 관계가 제대 후에도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의 기반이 되고 있다. 요즘도 번개팅을 하면 20~30명은 어렵잖게 모여 잔을 기울이는 것이 큰 즐거움 중 하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 동기들이 사명감 높은 대한민국 해군장교이자 균형 잡힌 인격체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게끔 지도해주신 훈련교관의 모습이다. 당시 훈련책임자였던 박순기 부장님(해사 15기·당시 중령)은 보기드문 덕장이자 용장이었다. 베트남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거니와 부하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는 분이셨는데 ‘양심을 바탕으로 한 법과 질서’라는 덕목을 제시하시면서 우리들을 교육시켰다. 자신의 사명감과 책임감에 부끄럽지 않게, 자율과 규율의 균형을 잡으라고 주문하신 것이다. 이 분의 말씀에 감화를 받은 나와 동기생들은 그 가르침을 금과옥조로 삼아 생활해오고 있다. 가끔 박 부장님을 뵈는 자리에서도 서로 그런 점들을 확인하곤 한다.

해군생활 전반을 통해 무엇보다 해군의 특성에서 비롯된 중요한 덕목이 있다. 바로 ‘한 배를 탔다’는 의식이다. 죽어도 살아도 같은 운명을 가졌을 때를 일컫는 말로 해군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군대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해군은 함정근무때 장교든 사병이든 각자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사자만이 아닌 함정 근무자 전체가 위험해지고 심지어 침몰하는 경우 모두가 함께 죽는다. 공동운명체인 것이다.조직이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은 내가 해군장교로 있으면서 배운 최고의 덕목으로 사회생활에서도 큰 힘이 됐다. 나와 우리 동기 모두는 물론이고 해군을 거쳐간 모든 이들이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는 덕목이 아닐까 싶다.

투철한 국가관, 자율과 규율의 균형잡힌 시각, 진한 동료애와 역할, 책임완수를 전제로 한 공동체 의식…. 해군생활을 통해 체득한 이런 교훈들이 바로 내 삶의 원천이 되고 있다.

김춘선 <인천항만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