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종말론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n@hankyung.com
종말론이 가장 득세한 것은 999년 중세 유럽에서였다. 당시 유럽인들은 대천사 가브리엘이 부는 나팔소리에 따라 모든 지하의 시신들이 되살아나며 인류가 최후의 심판대에 설 것이라는 공포에 떨었다. 물론 재림 예수가 나타나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소문도 동시에 번졌다. 당시 교황청에서 이를 부정하는 공식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1666년에도 666이라는 숫자와 함께 종말론이 유럽을 휩쓴 해로 기록되고 있다. 때마침 발생한 영국 런던의 대화재와 맞물리면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고 성서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종말론이 극성을 부렸다.

1999년에도 종말론이 활개를 쳤다. 1999년 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올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종말론을 더욱 부채질했다. 숫자 2000을 인식하지 못하는 컴퓨터의 오작동으로 대륙간 탄도탄이 발사되고, 사회가 뒤죽박죽되면서 인류가 멸망한다는 이른바 ‘Y2K’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혜성과 충돌할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에 앞서 한국에서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다미선교회의 휴거(携去) 소동이 일기도 했다. 신학에서는 종말론이 네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분석한다. 즉 인류의 멸망과 재판,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다. 물론 메시아의 출현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종말론은 대략 10년 주기로 찾아온다고 한다. 10년이 지나면 이전에 떠돌던 종말론은 기억에서 지워지고 사람들은 새로운 종말론에 귀 기울인다는 것이다.

마야종말설이 다시 떠돌고 있다. 고대 마야인들이 쓰던 달력이 기원전 3114년 8월13일을 원년으로 시작해 2012년 12월21일 끝난다는 게 근거다. 이날 종말을 믿는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는 부가라크 마을의 피크 드 부가라크산에 모이기로 해 프랑스당국은 하는 수 없이 입산 금지조치를 내렸다. 중국에선 주민들의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자 중국 당국이 종말론을 유포하는 자들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칠레와 과테말라 멕시코정부는 마야종말론을 이용한 각종 관광상품까지 내놓고 있다고 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교황청도 종말론을 부정하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종말론은 사회가 불안할 때 만연되는 괴담과 비슷한 현상이다. 사회가 투명하지 않고 폐쇄적일 때 더욱 기승을 부린다. 마야종말론이 지나가면 또 다른 종말론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바람에 현혹되지 않고 항심(恒心)을 갖고 할 일을 차분하게 하는 것이 대인(大人)이 아닐까.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