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끼면 영상·정보가 눈앞에…HMD기술로 '구글 글라스'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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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광학 조현일 사장, 투과형 완제품 내년 공개전 세계에 3억부가 넘게 팔린 토리야마 아키라의 일본 원작만화 ‘드래곤볼’에는 독특한 표시장치 ‘스카우터’가 등장한다. 반투명 선글라스처럼 생긴 이 기기를 한쪽 귀에 장착하고 상대방을 바라보면 체력수준과 정보가 자동으로 투명한 유리에 표시된다. 증강현실을 눈앞에서 구현한 이른바 투과형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see-through HMD)다.
평상시에도 착용 가능…스마트폰용 렌즈도 개발
만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이 기기를 광학부품 제조업체인 그린광학(사장 조현일·46)이 국산화했다. 조현일 그린광학 사장은 “세부 규격과 디자인을 마무리지어 내년 3월께 완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라며 “구글이 지난 4월 공개한 ‘프로젝트 글라스(Project Glass)’가 유일한 경쟁 상대”라고 말했다.HMD는 안경이나 헬멧 형태의 기기를 쓰면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등에 저장된 영상을 눈앞의 40인치 이상 대형 가상 화면에서 구현해주는 안경형태의 모니터다. 일본 소니, 국내에선 아큐픽스 등이 만든 HMD들은 모두 비투과형(see-close)방식으로 착용 시 화면 외 다른 곳은 전혀 볼 수 없다. 그린광학이 개발한 투과형 HMD는 평소엔 안경처럼 쓰고 다니다 필요할 때 작동하면 연결된 휴대용 저장장치 속 영상이나 정보를 유리 위에 띄워 볼 수 있다.
조 사장은 “군사 시뮬레이터용 HMD를 군 부대에 납품하던 중 급박한 군사작전이나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관련 정보를 컴퓨터를 켜지 않은 채 이동하면서 바로 확인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게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기술을 응용하면 화재 현장을 생생하게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열화상카메라와 연결하면 부상자들의 위치정보를 현장에 있는 소방관과 외부 중앙센터가 동시에 확인해 신속하게 구조활동을 벌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주대 물리광학과를 졸업한 조 사장은 1994년 일본계 광학기업인 서울광학산업에 입사하면서 광학분야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일본 연수 중 니콘이 반도체 생산 메인장비인 스테퍼를 개발해 비싼 값에 국내로 수출하는 걸 지켜보면서 이 분야의 가능성을 확인, 1997년 8월 그린광학을 설립했다. 때마침 외환위기로 환율이 치솟으며 광학제품 국산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조 사장은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스테퍼에 들어가는 광학필터를 개발해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50여개의 광학기술을 자체 개발한 그린광학은 15년 만에 광학렌즈의 설계, 제조, 코팅, 조립, 검사 등 모든 공정을 다루는 국내 유일의 광학 시스템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작년 매출 165억원 가운데 140억원가량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공정에 쓰이는 광학렌즈 부품에서 거뒀다. 올해 매출은 작년 수준인 17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린광학은 내년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내년 2월 출시되는 스마트폰 현미경 ‘스마트스코프’ 등이 대표적인 B2C 상품이다. 이 제품은 어두운 곳에서도 스마트폰 자체 조명을 사용해 2㎜ 이내의 사물을 10㎛(100만분의 1m)단위로 측정, 촬영하는 기기다. 조 사장은 “피부과 진찰이나 사건사고 현장에서의 지문 정밀감식, 위조지폐 감식 등 사용분야를 넓힐 여지가 많다”며 “내년엔 300억원 이상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오창=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