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식품 맥을 잇는 식품명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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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영귀 12대 전수자, 신광수 17대 전수자‘대한민국 식품명인’은 100% 국산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해 20년 이상 전통적인 방식으로 식품을 제조·가공·조리해온 사람들이다. 정부는 1994년 8월 조영귀 명인 등 4명을 첫 지정했다. 현재는 주류·식품 분야 45명의 식품명인이 전통식품의 계승·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영리 추구가 아닌 ‘전통의 맛’을 이어가고 있는 ‘대한민국 식품명인’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조영귀 씨는 사찰 법주 송화백일주를, 신광수 씨는 야생 작설차를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들어 우리 식품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식품명인들이다.
400년 송화백일주 계승조영귀 12대 전수자
조영귀 식품명인(63·사진)은 국내 유일 사찰 법주인 송화백일주의 12대 전수자다. 1994년 ‘대한민국 식품명인’ 1호로 지정된 조 명인은 “돈을 벌기 위해 술을 빚는 게 아니라 전통이 단절되지 않게 하려 빚는다”고 강조했다.
송화백일주는 1600년대 초부터 전북 완주의 모악산 수왕사에서 빚어 마시기 시작했다. 선승들의 영양 결핍과 혈액순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송홧가루 솔잎 등을 사용해 발효시킨 곡차다. 송화백일주를 음식이나 차에 한 방울 떨어뜨리면 잡냄새가 없어지고 음식 맛이 부드러워진다는 게 조 명인의 설명이다.일반 전통주는 고두밥을 쪄 누룩과 버무려 물과 혼합한 후 밀봉해 3주간 영상 18~22도로 유지했다가 소줏고리에 증류해 받아내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송화백일주는 제조법은 같지만 원료와 숙성기간에서 일반 전통주와 차별화된다. 송화백일주는 국내 3대 약수 중 하나인 수왕사 약수와 모악산에서 매년 봄·가을 채취하는 송순 솔잎 송홧가루, 모악산 7부 능선에서 띄운 누룩을 사용해 3년간 숙성시킨다. 조 명인은 “정성으로 빚는 술이라 소량만 생산한다”고 말했다. 조 명인은 또 7일간 온돌방에 재운 뒤 보름간 땅에 묻어 발효숙성하는 송죽오곡주도 만든다. 송화백일주는 장남 조의주 씨(39)가 13대째 잇고 있다.
가마솥서 9번 익힌 작설차신광수 17대 전수자
신광수 식품명인(60·사진)은 야생 작설차의 맥을 잇는 18호 ‘대한민국 식품명인’이다. 17대를 잇고 있는 신 명인은 개량종 차나무가 아닌 야생 차나무에서 자란 잎으로 작설차를 만든다. 작설차는 24절기 중 춘분부터 백로 무렵까지 7절기 동안만 참새 혓바닥만큼 자란 새싹을 채취해 가마솥에서 아홉번을 덖어 만든다. 찻잎은 전남 순천 차밭(49만5000여㎡)의 수령 20~700년 된 차나무에서 수확한다. 야생 차나무는 개량종과 달리 병충해가 없어 농약을 쓸 필요가 없는 대신 생산량은 적다. 신 명인은 “그동안 단 1g도 내 손을 거치지 않고 제조한 작설차는 없다”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찻잎을 가마솥에서 아홉 번을 덖는데, 이 과정에서 지문이 닳아 없다”고 말했다.
찻잎을 덖는 과정 중 특히 신경써야 하는 것은 장작불로 가마솥의 온도를 조절하는 일이다. 신 명인은 “가마솥 불보기만 최소한 3년은 해야 한다”며 “온도 조절을 제대로 못하면 찻잎이 타거나 눌거나 설익어 향과 맛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차생산국으로 등록되지 않아 수출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최근 야생 작설차의 맛과 향이 해외에서 높게 평가되면서 일본 등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신 명인은 “차나무의 꽃과 열매, 껍질에서 추출한 성분을 이용해 개발한 천연비누와 화장품 생산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