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에몬스가구 회장 "품질만이 위기 뚫는다"…고객 목소리 제품에 반영 '히트'

박수진의 기업인 탐구 - 김경수

현장 돌며 아이디어 챙겨…업그레이드 된 품질로 승부
17년째 직원 '신제품 품평회'…강화유리 혼수가구 '대박'

가구업계가 총체적 위기다. 국내 소비부진에다 건설경기 위축까지 겹쳐 올해 가구업계 매출은 지난해보다 20~30% 줄었다. 2014년엔 세계 거대 가구체인인 이케아의 진출까지 예정돼 있다. 업계에선 “생존이 곧 비전”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탈출구는 없을까.

가구업계의 산증인 김경수 에몬스가구 회장(59)을 인천시 남동공단 본사에서 만났다. 지난 33년간 온갖 풍상을 다 겪어온 김 회장은 “품질만이 위기를 뚫을 수 있는 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김 회장의 손은 거칠고 두툼하다. 손마디엔 두툼한 굳은살이 박혀 있다. 평생을 직접 가구를 만들어온 장인의 손이다.

그는 ‘가구’ 외길을 걸어왔다. 경남 마산 출신인 그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낮에 가구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경야독의 고단한 생활이었다. 그게 인연이 돼 졸업 후 서울로 상경, 옥수동에 있는 가구회사에 취직했다. 김 회장은 “일일이 손으로 가구를 만들면서 자재와 가공방식 등 가구의 모든 것을 몸으로 익힐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79년. 그의 나이 26세. 군대를 갓 제대한 한창때였고 겁도 없었다. 그는 영등포역 인근에서 7명의 직원을 데리고 목화가구(지금의 에몬스가구)를 차렸다. 하숙집 주인에게서 빌린 500만원이 종잣돈이었다. 그의 첫 작품은 다섯자(1.5m) 너비의 ‘아이보리 백색장’이었다. 일명 ‘주니어장’, 쉽게 말해 어린이용 장롱이다. 당시엔 고급스러운 자개장이나 비닐로 만들어 지퍼로 여닫는 비키니장이 유행이었다. 그는 틈새를 노렸고, 그 전략은 보기좋게 성공했다. 아기자기한 아이보리 백색장은 입소문을 타 하루 20~30개씩 팔려나갔다.

그로부터 33년. 주니어가구로 시작한 에몬스가구(1994년 개명)는 이제 가정용가구 사무용가구 특판가구까지 취급하는 중견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매출 1000억원을 바라볼 정도로 몸집도 키웠다.

그 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회사가 쓰러질 위기도 있었다. 2003년 이후엔 3년 동안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중국산 저가 가구가 몰려오면서 연속 적자를 냈던 것. 김 회장은 “매너리즘에 빠져 가구업계 트렌드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 위기를 자초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답답한 마음에 설악산을 혼자 찾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이대로는 살아남지 못한다’며 마음을 다잡고 대대적인 경영혁신에 나섰다. 임원진을 대거 교체했고 판매망도 다시 정비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의식개혁 운동도 시작했다. 친환경 소재를 도입해 품질 혁신을 일으킨 것도 이 무렵이다. 혁신의 결과는 혼수시장에서 주문 폭주라는 과실로 나왔다.

20일 인천 남동공단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이번 위기를 극복할 답은 가격이 아니라 품질과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경기 침체와 이케아 진출이라는 두 가지 악재를 어떻게 뚫을 것인가는 업계의 고민에 대해 그는 ‘더 좋은 디자인과 품질’을 추구해야 한다고 원칙론을 밝혔다.

김 회장은 “소비자가 만족하는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여기까지 왔다”며 “앞으로도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개발해 2020년 매출 5000억원,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에몬스가구는 매주 월요일 김 회장 주재로 디자인 회의를 연다. 전체 직원의 10%에 해당하는 25명의 디자이너들이 이 회의에 전원 참석한다.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직접 아이디어를 낸다. 직원들은 “회장님 아이디어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김 회장의 아이디어는 현장에서 나온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백화점과 전시장을 둘러보고 판매 직원들의 소비자 상담 내용을 꼼꼼히 챙긴다. 현장에서 나온 ‘힘있는’ 아이디어는 곧바로 히트작으로 이어진다. 강화유리를 사용한 혼수가구 디자인이나 장롱에 수납기능을 강화한 것 등이 모두 김 회장의 아이디어다.

그가 품질·디자인 경영의 핵심으로 꼽는 행사가 ‘신제품 품평회’다. 에몬스는 가구업계에서 유일하게 전국의 에몬스가구 대리점주들을 초청해 품평회를 열고 있다. 벌써 17년째다. 에몬스는 전국 200여개 대리점주들을 상·하반기 한 차례씩 초청해 다음 시즌을 위해 준비한 제품에 대해 품평을 받는다. 에몬스는 이 품평회를 통과한 상위 20~30%의 제품만 다음 시즌에 출시한다.

지난 5일 인천 에몬스 본사 공장에서 열린 2013년 봄시즌 신제품 품평회에도 140여명의 대리점주가 모여 디자이너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59종의 신제품을 디자인한 직원들과 질문·응답을 진행하며 꼼꼼히 채점을 진행했다. 채점 항목은 디자인과 재질, 가격 등이었다.

김 회장은 “우리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시장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다”며 “고객들을 직접 만나는 대리점주들의 의견이 바로 시장의 평가이고 이를 미리 반영하는 품평회 행사가 에몬스가 위기에 강한 진짜 이유”라고 설명했다.

에몬스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 침체에도 불구, 그동안 20~30%대의 고속성장을 이어왔다. 2007년 570억원이던 매출은 2008년 725억원, 2009년 757억원으로 늘었고, 2010년엔 990억원으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지난해엔 975억원으로 잠시 주춤했다. 올해는 990억원으로 소폭 상승할 전망이다. 당초 1100억원을 목표로 뛰었지만 ‘사상 최악’이라는 불황속에서 목표달성은 역부족이었다.

김 회장은 “업계 전체 매출이 20% 이상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나마 15억원 정도 매출을 늘린 건 선방”이라며 “내년엔 더 좋은 제품과 디자인으로 1100억원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케아의 진출에 대해서도 “글로벌 공룡인 이케아와 가격으로 맞붙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며 “지금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품질로 승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이 요즘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게 있다. 직원 복지와 사회공헌이다. 에몬스가구는 직원 이직률이 낮은 것으로 유명하다. 김 회장은 “직원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몬스가구는 매출 규모로 업계 5위권 내지만, 직원들의 임금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성과급도 철저히 챙겨준다. 김 회장은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 덕분에 에몬스가구는 직원 이직률이 업계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유명하다. 김 회장은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2008년부터 사재를 털어 에몬스장학회를 운영하고 있다. 해마다 1억원씩을 기부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다. 과일 생산농가를 돕기 위해 전남 나주, 경북 안동 등에서 제철 사과를 사서 무료 급식소나 보육시설에 전달한다. 김 회장은 지역사회 예술문화단체(베세토오페라단)를 후원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에몬스가 향기나는 직장으로 커가는 데 사회공헌은 필수 조건이라는 게 김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박수진 중기과학부기자 psj@hankyung.com